낙서 #1

2023-04-02 0 By 커피사유

낙서 시리즈는 커피사유가 쓰고 있는 글의 일부를 살짝 들추어보는 공간입니다.


나에게 고등학교란 분노와 우울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추상으로 기억된다. 1학년 때의 처음 시험 점수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에서 돌이켜볼 때 전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중학교 때까지 지탱해오던 자신의 무결성(無缺性)이 부정당할 때의 경험은, 즉 자신이 온전히 무너진다고 느낄 때의 경험은 충분히 참혹한 것이었다. 급박해진 나는 무관심과 광기란 무엇인지, 처음으로 체득하기 시작했다. 고독한 합강에서는 다른 이들이야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상관없다는 식의 냉소적인 태도를 배웠고, 외로운 기숙사에서는 하루가 저무든 말든 손에서 샤프를 놓지 않는 고집을 배웠다. 차가운 복도에서는 스스로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더없이 시린 물음들을 배웠고, 뜨거운 땀 냄새 속의 교실에서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심을 배웠다.

고등학교, 그것은 복수(複首)에 대한 복수(復酬)였다. 한없는 공허와 자기 부정 속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나아갔다. 하루하루는 곧 하나의 추락이었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기숙사의 이불 속에서 나의 눈이 감길 때마다 나는 좌절을 맛봤고 다음 날에 찾아올 공포에 몸을 떨었다. 지옥이 반복되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매일 스스로를 극복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음을 매 순간 뼈저리게 느꼈다. 우정, 운동장에서의 축구. 그것들은 사치였다. 대학(大學)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나는 무력감, 경외심,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나는 더없이 이기적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곳은 하나의 전쟁터였다. 쉼없이 쏟아지는 지식을 정신없이 주워담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몫이었다. 고등학교 교육은 그 주워담기를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그리고 더 정확하게 행하기를 요구했다. 상대평가라는 참호전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밟아야만 했다. 친구는 존재할 수 없었다. 만인은 만인에 대한 적이었다. 오직 나는 그들을 쓰러뜨리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겨우내 좁은 문에 도달할 수 있다는 비참한 사실만을 곱씹을 뿐이었다. 미리 주워담은 것들을 이용해서 저만치 나아가는 이들을 원망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리고 그 속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고등학교 2학년 말미에 나는 내가 조기졸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선생의 권유를 나는 거부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펜이 곧 칼인 전쟁 속에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 없는 고지가 있음을, 그리고 그 고지 위에 있는 이들은 언제나 같은 인물임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악착같이 베고 또한 나아가면 그 고지 위에 있게 되리라 믿고자 했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비유처럼,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했고,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점차 실감하게 될 뿐이었다. 믿음은 붕괴했고,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단어를 잊고자 했다. 그 단어를 떠올릴 만한 구석이 나의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보다 월등한 이들이 존재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한, 나는 결코 빌어먹을 최고가 될 수는 없었다.

조기졸업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나를 미친놈으로 취급했다. 성적이 좋은데도 얼른 학교에서 꺼져주지 않는다며 그들은 나가라고 소리질렀다. 그들과 나는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었다. 이 관계는 결코 나 자신의 잘못도 아니며 그들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둘 중에 하나가 뒤쳐져야 끝나는 전쟁이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자, 역겨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관계에서 잃을 것은 없었다. 그들이 뭐라 말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선생은 조기졸업을 계속해서 종용했고, 대학에서는 조금 더 자율적이고 여유있는 (이 말을 함으로써 솔직하지 못한 선생은 고등학교는 정확히 그 표현의 반대에 있음을 은연중에 인정했지만) 생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의외의 결과에 부모님도 조기졸업을 권유했다. 그러나 부모님 또한 뭐라 말씀하시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나와 상관있는 것은 단지 한없는 부족함만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이 과연 대학(大學)의 대학(大學)을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하는 질문뿐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채로 나는 조기졸업 시험을 쳤다. 선생들은 끔찍한 관례에 따라 조기졸업 시험 문제를 거의 다 가르쳐주었다. 시험 문제는 영어로 출제되었지만 시험 시간 중에 선생이 돌아다니면서 영단어를 해석해주었다. 나는 무엇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조기졸업 자격을 획득했고, 반 학기를 대학 입시 면접 준비와 그 실전에 보낸 끝에 결국 대학으로 왔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학의 이름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상관있는 것이란 나 자신의 무능과 무지로부터 어떻게 탈출할까 하는 구체적인 방법론뿐이었다. 이 방법론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발견해야만 했다. 고등학교가 대학까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른 이들은 대학 생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며 각종 동아리에 가입하고, 연애를 시도하는 와중에도 나는 기숙사에서 백면서생(白面書生)처럼 살았다. 각종 책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고, 대학의 강의를 역시 마구 쑤셔넣었다. 어른들이 설파하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나로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더 중요한, 더 결정적으로 대답되어야 할 질문이 존재했다. 나의 실존에 대한 치명적인 물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영구적으로 파멸할 것임이 명백했다.


… 위 내용에서 이제 대학에서 내가 배운 가장 귀중한 결론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써도 되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니체를 내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알베르 카뮈를 내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 맞는지도 또한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써야 한다.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나아가는 운명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