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인간, 공동체 그리고 ‘지성인’

2022-01-15 0 By 커피사유

오늘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를 함께 읽는 독서 모임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기억해두고 싶어서 대략적으로 그 내용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줄글로 옮겨두기로 했다.


인간이라는 종의 운명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들은 마치 하나의 집을 짓고 군집을 이루어 서식하는 개미들처럼 사회 속 한 마리의 구성원으로서 의식주를 포함한 일상 생활, 그리고 각종 것들을 배우고 만들어내는 등 온갖 행동을 한다. 그러나 어쩌면 개미들과는 달리 우리 인간들 중에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움직임과 현황, 즉 공동체의 빅 픽쳐(Big Picture)를 파악하고 그릴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무리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 같이 우리 사회 전체가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전체를 볼 수 있는 혜안과 통찰력을 가진 이들이 다름아닌 ‘지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그러한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전체를 아우르는 눈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 중에는 독서 모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독서 모임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그 과정에서 행하는 노력과 행위들로 하여 스스로의 지능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발전시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개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지금으로서는 개미와 인간의 지성에 대한 차이점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지는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생각할 수 있지만, 개미는 그렇지 못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즉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는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모종의 답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의 유무가 인간과 개미의 지능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유효한 차이점일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이 사상만큼은 오류의 여지가 있더라도 간직해보고 싶다. 개미들의 지성이 인간보다 우월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저 인간이라는 한 종에 속하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전체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논리와 이성이 소유할 것을 금하는, 자칫 인간 우월주의로 비추어질 수 있는 이 같은 위험한 추단을 조용히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혜안을 가진 자, 즉 ‘지성인’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면서도 동시에 ‘지성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지성인’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지성인’에 가까워지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들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존 로크의 경험론에 따르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다. 사회 전체의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그가 속한 공동체, 즉 사회 전체를 경험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의 경험이 항상 완벽한 내적 표상이나 관념의 정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또한 사회 전체에 속한 사물과 현상들은 그 개수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셀 수 없을 것만 같기도 하다. 한 인간이 그의 유한한 수명을 바쳐서 거의 무한해 보이는 모든 세계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주어진 시간의 일부를 사용해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본들, 탄광에서 석탄을 캐 본들 여전히 그 개인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무궁무진한 영역은 남아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이른바 ‘빅 픽쳐’를 그리는 이는 존재할 수는 없고 오직 가까워지기만 할 수 있는 그런 속성을 지닌 것은 아닌가.

그러나 ‘지성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좌절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리라. ‘지성인’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으며 이를 위해서 지금 우리 스스로가 그 가능성을 가슴 속에 품고 달려나가고 있으며 여전히 새로운 도전과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나와 주변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포류 속에서도 답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부류들은 영원하리라. 결코 ‘지성인’은 될 수 없더라도,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따라서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앞선 위험한 추단에 따르면 그것이 개미와 달리 인간이 가진 지성에게 주어진 속성이며 또한 그 특성으로 하여 지금 우리 자신이 특징지어지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