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의 경우: 프로이트의 ‘멜랑콜리’ 하에서

2021-06-14 0 By 커피사유

이 글은 Chalkboard에 올라가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서울대학교 강우성 교수님의 <문학과 철학의 대화>의 기말고사 Short Essay 문항에 대한 대비성 사전 답안으로 작성된 글임을 서두에 알려둡니다.

Question.

에드거 앨런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의 등장인물 뒤팽,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등장인물 윤희중,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의 등장인물 바틀비 중 한 인물을 골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우울(멜랑콜리, Melancholie)’ 개념을 통해 비교 분석해 보시오.

Answer (바틀비를 선택하였음)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창백한 우울의 바틀비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멜랑콜리’라는 분석틀에 완전히 맞지는 않지만, 몇 가지 추정을 통해 그의 우울을 ‘멜랑콜리’의 일종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바틀비의 경우에 대한 논의에 앞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멜랑콜리’라는 분석틀을 ‘멜랑콜리’의 발생 원인, 그 증상, 발생 과정의 측면에서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프로이트의 ‘멜랑콜리’는 우선 어떤 대상의 상실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한 상실의 경험이 ‘멜랑콜리’를 유발한다. 이러한 상실의 경험으로 멜랑콜리의 늪에 빠진 주체는 심각한 낙심, 사랑의 중단,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단, 행동의 억제 등의 증상을 보이지만 그 증상은 특히 자애심(自愛心)의 현저한 결여,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기 처벌을 원한다는 표시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자애심의 결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슬픔과 우울증』에서 설명하고 있는 멜랑콜리의 발생 과정을 이해함으로서 설명된다. 프로이트는 해당 글에서 대상에 대한 상실의 경험이 발생했을 때, 그 대상에 대하여 사랑과 동시에 가지고 있던 애증이 자아로 그 방향이 전환되면서 대상에 대한 비난이 자기에 대한 비난으로 전환되며, 그 결과로 멜랑콜리를 특징짓는 자애심의 결여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바틀비의 경우를 ‘바틀비의 우울’에 초점을 맞추어 조명하는 경우,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틀비가 우울 또는 그의 신경쇠락의 결과로 나타내는 증상들은 프로이트의 ‘멜랑콜리’의 것에 일치한다고 보기 상당히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바틀비의 우울의 증상으로 추정되는 것은 우선 바틀비의 소극적인 저항 의지의 표현, 즉 상용구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I would prefer not to“가 있으며,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 혹은 공동체의 어떤 계약적 질서를 위배하고 있다는 것, 즉 변호사에게 필경사로 고용되었을 때 그 계약 관계에서 요구되는 행위 – 자신이 필사한 서류를 검토하는 것, 우체국에 들리는 것, 음식을 사 오는 것 – 을 모두 소극적으로 거부한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는 마침내 ‘필사’의 행위까지 거부한다는 것, 또한 변호사가 그를 두고 사무실을 옮겼으며 그는 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전의 사무실의 공간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 – 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의 소극적인 저항 의지의 표현과 계약 질서의 위배 모두는 생각보다 프로이트의 ‘멜랑콜리’라는 분석틀에 잘 맞지 않는다. 이들은 낙심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며, 사랑의 불능도 아니고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범주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굳이 연관시킨다면 차라리 ‘행동 억제’의 특이한 경우라고 보게 되는 정도로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바틀비의 경우를 프로이트의 ‘멜랑콜리’라는 분석틀에 맞추어 분석하고자 할 때, 그 바틀비의 우울 혹은 신경쇠락의 원인 그리고 그 전개 과정을 확인하려고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 이들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에서 바틀비와 우리 독자를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인 변호사라는 화자를 통해 들려지는 바틀비에 대한 정보는 바틀비가 행한 행위,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어떤 소문 – 바틀비가 예전에 워싱턴의 Dead letter office의 말단으로 일하다가 해고되었다 – 는 두 가지가 사실상 유일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등장하는 변호사와 바틀비의 갈등에서 굳이 바틀비의 우울의 원인을 ‘멜랑콜리’적으로 분석할 때 필요한 어떤 상실한 대상을 찾을 수 있기는 하다. 그것은 ‘환대’이다. 바틀비가 Dead letter office에서 퇴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이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변호사와 그의 갈등으로 미루어보면, 바틀비는 작중 등장하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적대’ 혹은 ‘방치’될 뿐이지 진정으로 ‘환대’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은 우리의 추정에 불과할 뿐이며, 이 추정을 전제로 하여 바틀비가 이제 ‘환대’의 상실로부터 비롯된 ‘환대’에 대한 애증의 화살을 자기에게 돌려 멜랑콜리의 틀에 부합하는 우울에 빠졌다는 추론을 한다고 해도 이것은 우리의 가정이지 바틀비의 가정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틀비의 우울을 프로이트의 우울의 한 형태인 ‘멜랑콜리’라는 틀만 가지고 해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다만 만약 우리가 바틀비와 변호사의 갈등에서 추론한 ‘환대’의 상실이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멜랑콜리’의 해석의 틀 아래에서 수많은 우리의 지레짐작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멜랑콜리’의 틀을 반강제적으로 바틀비의 경우에 적용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우리의 가정이지 바틀비의 가정은 아니다는 것을 다시금 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