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적 방법’의 잊혀짐
#1.
컴퓨터와 정보 통신 기술이 극적으로 발달한 오늘날, 2000년대 이전은 물론 문명의 초기부터 널리 사용되었던 정보 전달 · 습득의 방식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소위(所謂) ‘아날로그적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문자를 통해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 바로 그 방법은 그 중요성이 치명적일 정도로 과소평가되고 있다.
#2.
‘아날로그적 방법’은 역사에서 두 번의 위기를 맞은 듯하다. 첫 번째 위기는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의 점토판 위에서 출발한 인류의 문자는 동물의 가죽과 파피루스, 양피지를 거쳐 오늘날의 ‘종이’ 위까지 도달했지만, 전자 소자의 특수한 정렬, 즉 ‘디지털적 방법’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보관하며 전달하는 것은 인류 문명에게 있어 격변기를 가져다 주었다. ‘디지털적 방법’의 등장 이후 인류는 역사상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효과적으로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이 위에 쓰여진 문자들의 위기는 이미 이 때부터 예언되어 있었다. 세계의 연결망, ‘인터넷’ 덕분이다. 한 때는 제한적으로 보급되었던 인터넷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 많은 곳을 연결하게 되었고,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정보를 종이 위에서 확인하지 않는다. ‘문자’는 이미 대중들에게서 버림받은지 오래이다. 더 〈직접적〉으로 보이는 매체들이 존재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상과 소리, 그들은 전자 기기에 연결된 화면 위에서 정보를 확인한다. 몇 번의 ‘클릭’ 만으로, 몇 번의 ‘스크롤’ 만으로.
그러나 ‘아날로그적 방법’의 가장 큰 위기란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도래한 두 번째 위기일 것이다. ChatGPT와 같은 〈그럴법한〉 대화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제 사람들은 그나마 전자 기기에 사람이 ‘쓰고’ 넣어주던 글이나 기록을 인공지능에게 위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서 생각한다. 대학과 학계에서는 벌써부터 학생들에게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아니하고서 ‘스스로 글을 쓰는 방법’보다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간의 편리에 대한 끝을 모르는 욕구는 이제 스스로의 ‘노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점으로 달려가는 듯, 많은 이들이 이 주장에 호응하고 있다.
즉, ‘아날로그적 방법’은 전후무후한 두 개의 위기로써 사람들에게 잊혀질 재앙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시설에서 종이책이나 종이신문을 들고서 페이지를 넘기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종이 위에 스스로 글을 쓰고 필사되거나 인쇄된 문자 위에 표식을 남기던 오랜 방식은 이제 환영받지 못한다. 종이는 적절한 압력이나 접촉을 감지하여 화면 위의 표시를 바꿀 줄 아는 기계로 대체된 지 오래되었고, 사람들은 ‘페이지 넘김’ 보다는 ‘스크롤’이나 ‘클릭’에 익숙해졌으니까.
#3.
그러나 기술이 가져다준 편리에 중독된 사람들은 ‘아날로그적 방법’이 인류에게 가져다 주었던 것이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가 스스로 종이와 같은 물리적 실체 위에 직접적으로 특정한 규칙들에 따라 표식을 남기며 그것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획득하였는가를 잊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인간의 사고는 본질적으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음을 잊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형식으로 우리는 생각을 정리하며 세상을 해석한다는 날카로운 그의 관찰을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글을 쓰거나 읽는 것을 하나의 ‘노동’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글의 읽고 쓰기란 사고를 진행하는 자연스러운 그 과정, 즉 ‘언어’를 적극적으로 시험해보고 또한 적용하는 그 과정임이 틀림없음에도, 우리는 정보 전달의 ‘디지털 방법’에 푹 절여져 이제는 세 줄 이상의 글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외치기도 한다. 요컨대 ‘요약’을 외치는 이들은 ‘세부사항’은 항상 생략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해준다고 믿는 현실과 거의 같거나 혹은 매우 흡사한 재현물을 정보 전달의 매개체로서 선호하기에, 정보의 〈결손〉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만드는가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시시때때로 위협하는 자연으로부터 오늘날의 문명을 일궈낸 근본에는 역사학자들과 박물학자들이 분명히 주지하고 있듯이,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고 그 동작을 이해하려 한 집요함이 있었다. 한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내면에서 이해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시도를 우리가 ‘사고(思考)’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바로 사고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무기이자 문명의 개척자요 모든 문화와 기술이 꽃피게 한 근본인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거나 읽으려고 하는 노력, 즉 정보 기록 · 전달의 ‘아날로그적 방법’이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감에 따라, 언어를 매개로 하는 사고는 점차 그 자신의 위치를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풍부하게〉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정보의 홍수를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것인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더 이상 ‘쓰지’ 않고 더 이상 ‘읽으려’ 하지 않는다.
#4.
즉 ‘아날로그적 방법’이 ‘디지털 방법’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퇴폐적인 믿음에 의거하여 인류는 그 자신의 진보에 대한 원천을 스스로 파기하려는 반동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명의 기관차는 이제 너무 빨리 달리다 못하여 그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말로로 진입하려고 하는 것인가? 컴퓨터와 정보 통신 기술이 극적으로 발달한 오늘날, 2000년대 이전은 물론 문명의 초기부터 널리 사용되었던 정보 전달 · 습득의 방식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소위(所謂) ‘아날로그적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문자를 통해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 바로 그 방법은 그 중요성이 치명적일 정도로 과소평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