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冬花), 박래전

2019-08-13 0 By 커피사유

당신들이 제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질이는
가을꽃일 수 없습니다.

제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건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건
내 발의 사슬 때문이지요.

겨울꽃이 되어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향기를 위해
내 이름은 동화(冬花)라 합니다.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박래전, “동화(冬花)” 전문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안다고 말하는 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는 다른 이들이 돌아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편에 그 혼자 있음을 한탄이라도 하는 것인가. 그러고는 자기는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절이는 가을꽃일 수 없다는 것인가.

가을꽃이 무얼 어떠하길래 그는 가을꽃일 수 없다는 것인가.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질이는 것이 그리 불만스러운 것인가, 단지 “당신들”의 눈을 웃게 하는 것이 그리 불만스러운 것인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안다고 말하는 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는 이는 분명 겨울에만 필 것이리라. 왜 하필이면 그는 사계 중 가장 추운 겨울에만 꽃을 피우리라고 말하는 것인가. 코끝을 간질이는 가을꽃도 싫은 그는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것은, 내 발의 사슬, 즉 자신의 운명이다고 덤덤히 고한다.

겨울꽃이 되어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덤덤한 숙연으로 스스로를 감싼 그는 진정한 향기를 위하여 – 코끝을 간질이는 가을꽃이나 봄과 여름에 만개하는 봄꽃과 여름꽃이 아닌 – 그의 이름은 동화(冬花)라 하고 있지 않은가.

겨울꽃, 동화라, 동화라. 그는 자신의 뿌리내린 운명의 끝이 겨울의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찾을 수 없는, 아직도 겨울의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당신들의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