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고일기 #6. 2019. 7. 12.

과고일기 #6. 2019. 7. 12.

2019-07-12 0 By 커피사유

과고일기(過顧日記)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과학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 작성한 몇 편의 일기를 옮겨, 과학고등학교 재학 당시의 느낌과 생각들을 되돌아보고 기록해두는 공간입니다.

금요일이었다. 내일이 수학과학페스티벌(이하 수과페)이다. 준비하느라고 하도 정신이 없었다. 8-9교시, 야간 1차시, 야간 2차시를 풀로 모두 쏟아부었다. 어제처럼 처참한 “청소”라는 중노동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꽤나 힘들었다. 지구과학 영재학급에서는 팀을 진행, 상담, 예비 총 3팀으로 나누고, 관리 문서와 세팅을 모두 마친 후, 리허설까지 나름대로 해 보았다. 30분이라는 시간 안에 제대로 우리가 설계한 시나리오대로 프로그램이 과연 흘러갈 수 있을찌는 미지수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일단 내일 아침에 청소부터 좀 다시…(기껏 청소했더니 도로 어질러놓았던 것이다)

교장이 오늘 전체 조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서, 심각한 철학적 내적 갈등으로 나를 밀어넣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공부한 것보다도 내일 아이들에게 웃으며 꿈과 희망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장의 담화 中

기분이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이 말에 대해 내가 순간적으로 든 직감 – 나의 양심이 일러주는 그 직감은, 결국 “아이들”의 현재의 밝음과 웃음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일종의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모든 교육은 나는 “어리다”라는 이유로 뭔가로 숨기고 웃고 반겨주던, 가면을 쓴 자들의 거짓이 난무하는 세계가 이 “가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며 매우 혼란스러웠다. 진실과 참의 세상에서,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순수한, 내가 한 때 어린 시절 꿈꾸었던 그런 세계는 불가능한 것인가. 내일 또 나는 거짓말과 거짓 웃음으로서 아이들을 반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것은 분명 또 하나의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가 되고야 말 것이다.

야간 3차시와 오전 중에는 늘 돌리던 정석을 돌렸는데도, 이놈의 14단원이 문제 푸는 재미는 꽤 쏠쏠한데(나름대로 문제에서의 규칙을 찾아 다음의 모르는 부분(수열의 다음항 등)을 추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계산이 더럽고 길며 복잡하고 문항도 꽤나 많아서, 결국 오늘도 못 끝내고야 말았다… 창피하군. 내일은 더욱 분발해야 할 듯하다.

KESO 천문학 과제, G 선생님의 물리 과제노트, K 선생님의 생명과학 I 교과별 세부능력특기사항, 영여 수행평가인 – 현장연구 갔다와서 만든 보고서의 내용을 발표하는 – 영어 차트 만들기 과제를 주말 내에 끝내야 한다. 이놈의 과고는 사람 피를 말려 죽인다. 바빠 죽겠네… 적당히 시간을 아주 잘(항상 잘이라는 말이 아주 애매하고 어려운 말이지만) 분배해서 해야 할 것 같다.

KESO를 그 덕에 공부할 시간이 없다. 젠장할. 내신과 올림피아드를 둘 다 챙기기는 확실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 ‘박준’을 만났다(인문학 특강). 그 사람의 이야기에서 그렇게까지 인상깊었던 것은 불행히도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M 선생님께서 사전에 배부한 그 시인의 시 “나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시인의 이야기에서 이해할 수 있는 범주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가 강의 시간에 이야기한, 그의 분열에 따른 2개의 서로 다른 대립된 일기장이.

교감이 교장 연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되었다. 교감쌤 파이팅!

점심과 저녁을 모두 라면으로 때웠다. 그 이유를 변명하자면, 정영 수과페 도와준다고, 정영 대빵인 J가 7-segments 코딩을 도와달라길레, 한 번도 다루어본적이 없는 아두이노 라이브러리를 대충 인터넷 보고 부랴부랴 만들어서 50분만에 라이브러리를 넘겨 주었는데, 회로 문제로 저녁에 계속 정상 동작하지 않아서 참 고민이 많았다. K 정보 선생님은 정작 중요한 것 대신 그러한 부차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J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 했다. 뭐, J는 결국 릴레이를 사용해서 하는 것을 포기했다. 오랜만에 header file과 클래스의 생성자, 소멸자, 인스턴스 변수 등,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을 만져보니, 절차지향의 C가 아닌 내가 원래 하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여 기분이 꽤나 좋았다. 오늘 정보 세부능력특기사항 제출 자료에 온라인 설문으로 쓴 것처럼, 나는 응용 GUI 프로그래밍과 객체 지향을 구려터진 C보다는 훨씬 좋아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