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일지 #7. 『죄와 벌』, 첫 번째 기억

탐서일지 #7. 『죄와 벌』, 첫 번째 기억

2021-07-24 0 By 커피사유

탐서일지(耽書日知)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어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두고 나누기 위해, 그리고 책을 읽어나갈 동기를 약속하기 위한 장으로써 마련된 독서 일지 시리즈입니다.

개요

마지막으로 탐서일지를 쓴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 새로운, 7번째 탐사일지 시리즈로 수록될 이 글을 쓰기 전 확인해보니 마지막으로 작성된 탐서일지인 탐서일지 #6. 성찰 -3-은 금년 3월 27일에 작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근 석달 가까이 이 포스트를 연재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탐서일지가 아닌, 개인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몇 개의 게시글을 통하여 나는 내가 그 동안 읽었던 책들을 옮기고 거기에 주석을 다는 형태로 책을 읽어왔다. 특히 얼마 전부터 계속 나의 글에 영향을 미쳐온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등은 더욱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원문 그대로 옮긴 후 그 위에 단순히 주석을 다는 행위란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가 있을 여지가 다분하다. 물론 내가 주석을 따로 분리하여, 그 주석에 상응하는 원문 일부와 병기하여 평론 또는 연구의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 대한민국 저작권법에서의 면제 사유에 해당하므로 괜찮겠지만, 내가 근 석달간 해 온 그 방식은 해당하지 않을 것 같기에 나는 글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또한 앞으로도 공개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최근 읽기 시작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이 책은 아무래도 이 ‘탐서일지’ 시리즈로 등재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이 소설 자체가 장편인 것도 있어 분량이 길기 때문에 근 석달간 해 오던 방식대로 일일이 타자를 쳐서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그러할 필요도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오랫동안 방치한 이 ‘탐서일지’ 시리즈가 아직 사장되지 않았음을 알릴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시간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소설에 대하여 탐서일지를 써 내려가보려고 한다. 책은 eBook으로 구매하였으나, 정확도와 출처의 명시를 위하여 밝혀두자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죄와 벌’. 세계문학전집. 민음사를 이용하였다.

기억의 영역: 문과 답, 주석들

#1.

‘음…… 그렇다……. 모든 것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데 오로지 겁을 먹은 탓에 모든 것을 놓쳐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공리이다…… 궁금하군,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뭘까? 새로운 걸음, 자기 자신의 새로운 말을 그들은 제일 두려워하지……. (중략)’

솔직하게 이 부분은 나에게는 이해가 조금 어려운 부분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이전과 달라져 다시는 그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낯섬마저 느낌으로써 믿을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므로 이 부분을 두려워할 수 있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믿을 수 없음이라는 상황이 궁극적으로는 자기-초극으로 이어진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자기-초극의 과정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짜릿한 극복의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두려움 이상의 충분한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하므로 나는 이 부분을 아마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2.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데, 이건 진리입니다. 술타령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도 내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진리지요. 하지만 극빈이라면, 형씨, 극빈은 죄랍니다. 그냥 가난한 정도라면 아직은 타고난 감정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극빈한 상태라면 아무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극빈하면 지팡이로 쫓아내는 것도 아니고 숫제 사람들 무리에서 빗자루로 싹 쓸어 내지요. 괜히 더 모욕을 주려고요. 이것도 옳은 일이지요, 극빈한 상태에서는 그 스스로 자신을 모욕할 태세를 갖추니까요. 그래서 곧장 술집행이고요! (중략)”

그러니까 이 말에 따르면 ‘가난’과 ‘극빈’의 차이란 타고난 감정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 아니냐이다. 대체로 ‘가난’한 경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최소한의 보루가 남아 있는 것인데, ‘극빈’한 경우는 그 자존심을 포기하고 돈을 추구해야 하는 궁한 상황이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처음 부분들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들, 그리고 지금 중점적으로 기술되는 이 대학생 또한 아마도, 추정컨대 ‘극빈’한 경우일 것이다.

#3.

“불쌍히 여기다니! 대체 왜 나를 불쌍히 여기겠어!” 마르멜라도프는 이 말만 기다렸다는 듯 그야말로 영감에 휩싸여 한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면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울부짖었다. “대체 왜 불쌍히 여기겠냐고 네놈은 말하는 거냐? 그래! 나 같은 놈을 불쌍히 여길 이유는 전혀 없지! 나란 놈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해, 불쌍히 여길 게 아니라 못 박아야 한단 말씀! 그래, 못 박아라, 재판관아, 못 박으란 말이다, 일단 못 박은 다음에 불쌍히 여기라고! 그때는 내 발로 직접 못 박히러 갈 것이다, 이 몸은 즐거움이 아니라 비애와 눈물을 갈망하니까……! 이 장사꾼아, 네가 네놈의 이 보드카 반병을 갖고 쾌락을 만끽했다고 생각하나? 비애, 비애야말로 내가 이 술병의 밑바닥에서 찾고 있던 것이며, 또 그 비애와 눈물을 여기서 맛보고 찾아냈단 말이다.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셨고 또 모든 이들과 모든 것을 이해하셨던 그분만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이다, 그분만이 유일한 분이자 심판관이니까. 그분께서 그날에 오셔서 물어보실 테지. ‘못된 폐병쟁이 계모를 위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위해 자기 몸을 팔았던 그 딸은 어디 있느냐? 지상의 자기 아버지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주정뱅이를, 그의 짐승 같은 행각에 경악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쌍히 여긴 그 딸은 어디 있느냐?’ 그러고는 말씀하시겠지. ‘자, 이리 오너라! 나는 이미 너를 한 번 용서했다…… 한 번은 용서했노라…… 지금도 너의 많고 많은 죄가 용서되리라, 많고 많은 사랑을 베풀었으니……’ 그러고는 나의 소냐를 용서해 주실 거야, 용서해주시고말고.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나는 벌써 알고 있어……. 아까 그 애의 집에 갔을 때 마음속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 그분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용서해 주실 거야, 선한 자든 악한 자든, 현명한 자든 겸손한 자든 전부……. 그리고 모든 자들에 대한 심판을 끝내시면 그때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너희들도 나오너라! 주정뱅이들아 나오너라, 약한 자들아 나오너라, 수치를 모르는 자들아 나오너라!’ 그러면 우리는 모두 넉살 좋게 앞으로 나가 서는 거다. 그러면 또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너희들, 돼지들아! 짐승의 꼴을 하고 짐승의 각인을 지녔지만, 너희들도 나오너라!’ 그러면 현자들도, 식자들도 이렇게 말할 테지. ‘주여! 어찌하여 저들을 받아 들이시나이까?’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저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자들아, 내 저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식자들아, 저들 중 단 한 명도 스스로를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자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러고는 우리를 향해 두 손을 내미실 것이고 우리는 그 앞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리고…… 모든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다들 깨달을 것이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도…… 그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주여, 주님의 왕국이 도래하길!”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발화 분석을 조금 해 보면, 프로이트의 ‘멜랑콜리’의 증세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듯 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상실에 따른 심리적 손실이 커서, 한 사람이 원래 애정의 대상으로 집중시키던 리비도가 갈 곳이 없어진 경우, 그 방향이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와 자애심의 하락과 궁극적으로는 공개된 장소에서의 자기 비난, 자기 자신에 대한 처벌 의사의 강력한 표현 등의 증상이 발생하는데, 위 증상이 전체 발화에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이른바 ‘최후의 심판’에는 도덕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 그리고 계모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보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판 딸 모두가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몸을 판 딸과 술고래로 가장의 의무를 버린 아버지 모두 용서될 수 있지 않을 것 같음에도, 그럼에도 최후에는 둘 다 그러한 자격이 없다는 것으로 하여 용서받는 것이다.

#4.

방을 나오며 라스콜니코프는 한 손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어 선술집에서 쓰고 남은, 1루블의 거스름돈을 최대한 긁어모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창턱에 얹었다. 그런 다음 이미 계단까지 나왔을 때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아니, 이 무슨 한심한 짓을 한 거야.’ 그는 생각했다. ‘저들에게는 소냐가 있고, 돈이라면 나도 필요한데.’ 하지만 도로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러저러나 어차피 그런 짓은 하지 않았으리라는 판단이 서자 한 손을 내젓고는 자기 집으로 향했다. ‘소냐에게도 화장품이 필요할 테니까.’ 그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을 이어 나갔고 독살스럽게 웃었다ㅑ. ‘그런 유의 청결을 유지하자면 돈이 들지……. 음! 하긴 소네치카야말로(소냐의 애칭) 오늘 당장 파산할지도 모르겠군, 그 일도 고급 모피용 동물 사냥이나…… 노다지를 캐는 일처럼 모험이니까…… 그러니 저들 모두 내 돈이 없으면 내일 당장 길바닥에 나앉겠지……. 정말 장하다, 소냐! 어쨌든 저들은 용케도 참 멋진 우물을 파낸 셈이야! 그러고는 이용해 먹는 거지! 이거야말로 이용해 먹는 게 아닌가! 그러다 익숙해진 거야,. 다들 좀 울고 그렇게 익숙해진 거지. 인간이란 워낙에 비열해서 모든 것에 익숙해지니까!’

그는 생각에 잠겼다.

“뭐, 내 생각이 틀렸다면” 하고 그가 갑자기 저도 모르게 외쳤다, “정말로 인간이라는 것이 전부, 다시 말해 인류 전체가 다 비열한 놈은 아니라면, 그렇다면 나머지 모든 것이 편견이요 조장된 공포일 뿐, 장애물은 그 어떤 것도 없다는 뜻이며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

작중 이 불쌍한 대학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의 두 가지 심성을 모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정신분열적인 대조법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대학생의 작중 모습은 인간의 이기적 심성과 이타적 심성이 동시에 혼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네치카가 이용당함을 기반으로 하여 소네치카가 몸을 팔아 보전시키는 가족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며, 이로부터 “인간이란 워낙에 비열해서 모든 것에 익숙해지니까”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도 돈이 궁함에도 불구하고 돈을 남기고 나온 것을 고려하면서 “정말로 인간이라는 것이 전부, 다시 말해 인류 전체가 다 비열한 놈은 아니라면”이라고 생각하며, 그 경우 아직 희망은 남아 있고 인류애로 전체가 결속되기 위한 “장애물은 그 어떤 것도 없다는 뜻이며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5.

 “프라스코비야 바블로브나가 학생을 경찰에 고발할 생각인가 봐,” 그녀가 말했다.

그는 얼굴을 잔뜩 찌뿌렸다.

 “경찰에? 무슨 이유로?”

 “방세를 내길 하나, 그렇다고 방을 빼 주길 하나. 무슨 이유인지 알 만하지.”

 “에잇, 젠장, 난리 났군.” 그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아니, 지금은 좀…… 나도 때가 좋지 않은데……. 주인아줌마도 참 바보야.” 그가 큰 소리로 덧붙였다. “오늘 잠깐 들러서 얘기를 해 보지.”

 “주인아줌마야 나처럼 바보지만 그렇게 똑똑한 학생은 왜 부대 자루처럼 뒹굴고만 있어, 그 재주를 보여 줄 생각도 않고? 전에는 애들을 가르치러 다닌다고 하더만 지금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하는 게 있어…….” 라스콜니코프가 마지못해 매몰찬 어투로 말했다.

“뭘 하는데?”

“일을 하지…….”

“무슨 일?”

“생각하는 일.”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스타시야는 곧장 배꼽이 빠져라 웃어 댔다. 그녀는 웃음이 많은 편이어서, 웃긴 일이 있으면 소리도 없이 온몸을 흔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속이 메스꺼워질 때까지 웃어 댔다.

 “그 생각 끝에 돈이 듬뿍 나왔어, 어?” 마침내 그녀가 말을 할 수 있었다.

 “신발도 없이 애들을 가르치러 다닐 수는 없지. 게다가 그 일도 신물이 나.”

 “그 신물, 우물에는 뱉지 마쇼.”

 “애들 가르쳐 봤자 잔돈푼이나 쳐주는걸, 그 푼돈 갖고 뭘 하겠어?” 그는 마지못해, 흡사 자문자답하듯 말을 이어 갔다.

 “그럼 학생 손에 당장 한밑천이 떨어지기라도 한대?”

 그는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한밑천 잡아야지.”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중요한 건 이 대학생이 하녀의 말, “그럼 학생 손에 당장 한밑천이 떨어지기라도 한대?”라는 말에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진 잠시의 침묵과 단호한 대답의 연유일 것으로 생각된다. 뒤쪽 내용을 고려해보면, 이 대학생은 빈곤한 지식인 계층에 있는데, 그러하므로 그나마 주변의 현상을 몇 가지 이상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녀는 계속 그의 생각하는 일에 대하여 ‘자본’ 즉 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는 하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데, 그는 아무래도 ‘돈’과 관련되어서 ‘종속적’인 태도를 보이는 하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다. 한편 ‘돈’에 대하여 이처럼 종속적이고 싶지 않은 그이지만, 그는 형편이 좋지 못하므로 그는 잠시 침묵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도 돈이 전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마지막의 단호한 대답이란 슬프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6.

 혹시나 싶어 하는 말이다. 비단 이 일만이 아니고 대체로 누구든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대할 때 차근차근 신중을 기해야 하고 나중에 가서 바로잡고 씻어 내기가 극히 힘든 과오를 범하거나 편견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7.

자, 그럼 주머니를 벌려 보시라! 보다시피 실러 유의 이런 아름다운 영혼들은 항상 이런 식이란 말이야.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을 공작 깃털로 장식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쁜 면이 아닌 좋은 면을 믿으려 하지. 설령 동전의 뒷면은 다르리라는 예감이 들지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에게 미리부터 참말을 하는 법은 없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니까 자기들 손으로 열심히 치장해 놓은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기 전까지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진실을 거부하지.

#8.

수수께끼의 열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사실 뻔한 일이다. 자신을,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파는 일은 없을 아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 이렇게 판다는 것이다! 자기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문제의 핵심이다. 오빠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팔 것이다! 모든 걸 다 팔 테지! 오, 이 경우 우리는 때에 따라서는 우리의 도덕적 감정도 억누를 것이고 자유며 평온이며 양심까지 모든 것, 모든 것을 고물 시장에 내놓을 것이다. 인생이야 망하든 말든! 우리가 사랑하는 저 존재들이 행복하기만 하다면야. 더욱이, 자기만의 궤변을 고안해 내고 예수회 교도들한테 배운 대로 잠깐 동안이나마 자신을 달래며 이렇게 해야 한다, 선한 목적을 위해 정말로 이래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것이다. 우리는 원래 이런 자들이고 모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 경우에는 다르 아닌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코리코프가 관건이자 전면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 여하튼 그의 행복도 일궈 주고 학비도 대 주고 사무소의 동업자로도 만들어 주는 등 그의 운명을 통째로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소리지. 아마 나중에는 명예와 존경을 누리는 부자가 될지도 모르고 심지어 영광스러운 인물로 생애를 마치게 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어머니는? 하긴 이 경우 중요한 건 로쟈, 금쪽같은 로쟈, 이 장남이다! 그래, 이런 장남을 위해서라면 이런 딸이라도 희생한들 어떠랴! 오, 온당치 못한, 사랑스러운 마음들이여! 아니, 이건 또 뭔가. 이 경우 우리는 소네치카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 셈이잖은가! 소네치카, 소네치카 마르멜라도바, 이 세상이 지속하는 한 영원할 소네치카! 너희 둘은 모두 희생을, 희생의 크기를 완전히 재 봤던가? 그런가? 감당할 만한가? 이익이 될까? 합리적일까? 두네치카, 소네치카의 운명이 루쥔 씨와 함께하려는 운명보다 전혀 더 추악할 것이 없음을 알고나 계신지? ‘여기에는 딱히 사랑이랄 것은 있을 수 없지만’ 하고 엄마는 쓰고 있다. 아니, 사랑은 고사하고 존경조차 있을 수 없다면, 오히려 진즉부터 혐오와 경멸과 염증만 있다면, 그렇다면 어쩔 텐가? 그렇다며, 고로 또다시 ‘각별히 청결을 유지해야’ 되겠군, 그렇지 않으신지, 어? 이 청결이 뭘 의미하는지는 아시는지, 아시냐고요? 루쥔식의 청결이 소네치카의 청결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 심지어 그보다 더 나쁘고 더럽고 비열하다는 사실도 아시겠지, 왜냐면, 두네치카, 당신은 어쨌거나 넘쳐 나는 안락을 즐기겠다는 잇속도 있지만 저쪽은 그야말로 굶어죽느냐 마누냐가 문제니까! ‘이런 청결은, 두네치카, 비싸게, 제법 비싸게 먹힐걸!’ 자,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힘에 부친다면 후회하게 되실까? 남에게는 전부 감추어야 할 비애, 슬픔, 저주, 눈물도 정말 하염없이 많지 않을까, 당신은 마르파 페트로브나와는 다른 사람이잖아? 그럼 엄마는 또 어찌 될까?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아 괴로워하는 양반인데, 모든 걸 분명히 보게 될 그때는? 그럼 또 나는? 아니, 정말로 나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당신의 희생 따위는 싫거든, 두네치카, 싫어요, 엄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내가 살아 있는 한은 절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9.

‘있을 수 없다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도록 네가 대체 뭘 할 건가? 금지라도 할 텐가? 무슨 권리로? 그런 권리를 얻기 위해 네가 그들에게 무엇을 약속해 줄 수 있나? 학교를 마치고 일자리를 얻으면 너의 운명과 미래를 송두리째 그들에게 바친다? 그런 얘기야 계속 들어 왔지만 그것도 아직 미지수이고 지금은? 실상 뭐든 지금 당장 해야 한다, 너도 이건 알고 있겠지? 그런데도 너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그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잖는가. 그들도 100루블의 연금과 스비드리가일로프 집에서 받을 봉급을 담보로 돈을 타 내고 있잖은가! 그들을 어떻게 스비드리가일로프 집안사람들과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바흐루쉰에게서 보호해 줄 텐가, 이 미래의 백만장자야, 저들의 운명을 관장하는 제우스야? 십 년 후라고? 그래, 십 년 후면 어머니는 그놈의 머릿수건을 뜨느라, 또 아마 눈물을 쏟느라 눈이 멀어 버릴 테지. 못 먹어서 바싹 말라 버릴 테고. 그럼, 동생은? 자, 생각 좀 해봐, 십 년 후, 혹은 요 십 년 동안 동생은 어떻게 될까? 짐작이 가지?’

그는 이런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약 올리면서 어떤 쾌감까지 느꼈다, 하긴 모두 새로울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오히려 오래전부터 곪아온 해묵은 질문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을 찢기 시작하여 급기야 갈기갈기 찢어 놓았으니 말이다. 지금과 같은 우수가 그의 내부에서 싹튼 것은 옛날 옛적이지만, 그것이 자꾸 자라고 쌓이더니 최근에는 완전히 무르익고 응축되어 끔찍하고 야성적이고 환상적인 질문의 형태를 띠더니 무턱대고 해결을 촉구하며 그의 가슴과 머리를 괴롭혔다. 그러던 차 지금 어머니의 편지가 갑자기 천둥번개처럼 그를 내리친 것이다. 이제는 이런 질문은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마음 아파하거나 수동적으로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뭐든 해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어서 빨리.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슨 결단이든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삶울 아예 거부해야 한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 흥분하여 소리쳤다. “운명을 있는 그대로 순순히, 단번에 영원히 받아들여야 한다, 행동하고 살고 사랑할 수 있는 온갖 권리를 거부함으로써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을 목 졸라 죽여야 한다!”

‘더 이상 갈 데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하시냐고요, 형씨?’ 갑자기 마르멜라도프가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어디든 갈 데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결국은 그가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자본주의 앞, 즉 물질과 자본 앞에서 지나치게 빈곤하여 능력이 없는 빈곤한 지식인 그 자신의 무력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장에 대학을 졸업한 상태도 아니며 일자리가 있는 것 또한 아니므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꺼이 진짜로 원하지 않는 시집을 가겠다는 동생과 어머니의 이상한 자기 변호 및 희생을 막을 수 없기에, 그리고 이러한 희생은 결코 이롭지 않으며 상처만을 남긴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기에 그의 괴로움은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단을 내릴 수 없다면 남는 것이란, 결국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므로 심리적으로 그 자신이 무너지는 것 밖에 없다. 생각을 피할 수 없다면 생각을 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며, 그러한 생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방식을 아마도 찾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불쌍한 대학생은 삶의 마감, 즉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을 목 졸라 죽여야 한다!”를 말하고 있기는 하다. 물론 여기서 삶의 마감이란 반드시 생물학적 죽음만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의 마감이라 분명히 부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그러한 죽은 상태의 결말이란 작중 등장하는 말을 빌리면 술집행, 병원행이므로, 결국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법인 것이다. 빈곤, 그 중에서도 극빈은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10.

라스콜니코프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고향 소도시에 살던 무렵, 어린 시절이 꿈에 나왔다. 그는 일곱 살쯤 됐고 축제일을 맞아 저녁 무렵에 아버지와 함께 교외를 산책하는 중이다. 날은 흐리면서도 숨 막힐 듯 후텁지근하고 장소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과 완전히 똑같다. 심지어 기억 속의 그곳이 지금 꿈속에 나타난 모습보다 훨씬 더 흐릿할 정도였다. 소도시는 확 트여 한눈에 다 보이고, 주위에는 버드나무 한 그루도 없다. 어딘가 아주 멀리, 저 하늘 끝에 숲이 거무스름하게 보인다. 소도시의 맨 끝에 있는 밭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술집이, 큰 술집이 있는데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며 그 옆을 지날 때면 항상 공포와 같은 몹시 기분 나쁜 느낌을 안겨 주곤 했다. 거기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다들 고함을 질러 대고 껄껄 웃어 대고 욕설이 오가고 목 쉰, 추잡한 소리로 노래를 불러 대고 걸핏하면 싸움판을 벌였다. 술집 주위에는 항상 그렇게 술 취한, 무서운 낯짝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이었다……. 그들과 마주치면 그는 아버지에게 바싹 달라붙은 채 온몸을 발발 떨었다. 술집 옆으로 난, 샛길 같은 길에는 항상 먼지가 자욱했고 그 먼지는 또 항상 시커멨다. 길은 구불구불 더 멀리까지 뻗어 삼백 걸음쯤 떨어진 지점에서 소도시의 묘지를 끼고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묘지 한가운데에는 초록색 지붕이 달린 석조 교회가 있는데,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할머니의 추도 미사를 드리러 부모님과 함께 일 년에 두 번쯤 찾던 곳이었다. 그럴 대이면 항상 쿠치야를 하얀 접시에 담아 냅킨에 싸서 가져갔는데 쌀로 만든, 건포도로 십자가 모양을 낸 달달한 것이었다. 그는 이 교회를, 교히 안에 있는, 대개의 경우 틀을 씌우지 않은 고풍스러운 성화들과 머리를 덜덜 떠는 늙은 사제를 좋아했다. 묘석이 있는 할머니의 무덤 옆에는 태어난 지 여섯 달 만에 죽은 남동생의 자그마한 무덤도 있었다. 그는 남동생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기억할 리도 없지만 남동생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기 때문에 묘지를 방문할 대마다 그 무덤 앞에서 경건하고 공손하게 성호를 긋고 절을 하고 거기에 입을 맞추었다. 자, 그가 꿈에서 보는 장면을 이렇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묘지로 난 길을 걸으며 술집 옆을 지나고 있다.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두려움에 딸며 술집을 둘러본다. 특이한 광경이 그의 주의를 끈다. 이번에는 거기서 한 판이 벌어져, 화려하게 차려입은 소시민 여자들이며 아낙네들이며 그 나면들이며 온갖 어중이떠중이가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다들 술에 취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술집 현관 옆에는 짐마차가 서 있는데 좀 이상한 짐마차이다. 커다란 짐마차로 보통 커다란 짐말이 매어져 있고 물품과 술통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긴 갈기와 굵직한 다리를 뽐내는 거대한 짐말이 짐이 없는 쪽보다 짐이 있는 쪽이 차라리 더 가뿐하다는 듯 유유자적 고른 걸음을 떼 놓으며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무슨 산더미 같은 짐을 싣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항상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한 노릇인데, 이렇게 커다란 짐마차에 작고 비썩 마른 적갈색 농사용 암말을 매 놓았다. 그것은, 그도 종종 보아왔거니와, 때때로 무슨 장작이나 건초 더미 같은 짐을 높이 싣고 가면서 죽을힘을 쓰는 종류의 말로서, 특히 짐이 진흙탕이나 바퀴 자국에 빠질라치면 항상 농군들에게 채찍으로 호되게, 정말 호되게 얻어맞고 때때로 곧장 낯짝과 눈을 얻어맞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파,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파 그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지만, 엄마는 그런 그를 항상 창가에서 멀리 떼 놓곤 했다. 자, 한데 갑자기 사위가 몹시 시끌시끌해진다. 술집에서 고함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발랄라이카를 켜면서 곤드레만드레 취한, 덩치가 무척 큰 농군들이 울긋불긋한 루바쉬카를 입고 외투를 걸친 채 나온 것이다. “자, 타라고, 다들 타!” 한 사람이 이렇게 외치는데, 아직은 젊고 목이 굉장히 굵고 얼굴은 살도 뒤룩뒤룩 찌고 홍당무처럼 붉다. “전부 태워다 줄 테니까 타라고!” 하지만 즉시 웃음과 아유가 울려 퍼진다.

“저 따위 말라깽이 말로 잘도 태워다 주겠다!”

“이봐, 미콜카, 자네 제정신인가, 저런 암말을 저런 짐마차에 매 놓다니!”

“저 적갈색 암말은 틀림없이 스무 살은 족히 될 거야, 이보게들!”

“타, 다들 태워다 주겠다니까!” 미콜카는 또다시 이렇게 소리키며 제일 먼저 짐마차에 뛰어올라 고삐를 쥐고 온몸을 쭉 펴며 마부석에 선다. “밤색 말은 아까 마트베이가 몰고 가 버렸거든.” 그가 짐마차에서 소리친다. “이 암말 때문에, 이보게들, 나는 아주 복장이 터질 지경이야. 당장 쳐 죽였으면 싶어, 먹이만 공짜로 축내고 있거든. 그러니까 타란 말이야! 마구 달리게 해 주지! 신나게 달릴걸!” 그러고서 그는 채찍을 손에 쥐고 쾌감을 느끼며 적갈색 암말을 갈겨 줄 태세를 갖춘다.

“타라는데 왜들 이래!” 군중 속에선 껄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들었나, 마구 달리게 해 준다는군!”

“저년은 벌써 십 년째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했을걸.”

“지금부터 달릴 거야!”

“인정사정 볼 것 없어, 이보게들, 다들 각자 채찍을 들고, 자, 준비!”

“옳거니! 마구 갈겨 보자!”

다들 껄껄 웃고 농지거리를 주고받으며 미콜카의 짐마차에 올라탄다. 여섯 명 정도가 탔는데 자리는 더 있어싸. 그들은 뚱뚱하고 볼이 발그스레한 어떤 아낙네를 태운다. 그녀는 붉은 무명옷을 입고 구슬이 달린 두건을 쓰고 발에는 모피 실내화를 신고 있는데, 호두를 까면서 깔깔 웃고 있다. 주위의 군중도 마구잡이로 웃어 댄다.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렇게 비실비실한 암말이 저런 무게를 싣고 달릴 거라니!짐마차에 탄 청년 두 명이 미콜카를 도우려고 즉시 각자 채찍을 든다. “이랴!” 소리가 울려 퍼지자 여윈 말은 죽어라 용을 쓰며 몸을 비틀지만 달리는 건 고사하고 거의 한 발짝도 떼 놓지 못한 채 그냥 다리만 허우적대며 힝힝댈 뿐, 콩알처럼 쏟아지는 세 사람의 채찍질에 점점 주저앉는다. 짐마차와 군중 사이에서는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지지만 미콜카는 화를 버럭 내고 자기 분을 못 이겨 채찍질에 더욱더 힘을 가하는데, 꼭 암말이 달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것 같다.

“나도 태워 줘, 이보게들!” 이 일에 구미가 당긴 어느 청년이 군중 틈에서 소리친다.

“타! 전부 타라!” 미콜카가 소리친다. “전부 태워다 주지. 채찍을 갈길 테다!” 그러고서 죽어라 채찍을 휘갈기는데 어찌나 성질이 났는지 이미 뭘로 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빠, 아빠” 하고 그가 아버지에게 소리친다. “아빠, 저 사람들 뭐 하는 거야? 아빠, 불쌍한 말을 마구 때리고 있잖아!”

“가자, 어서 가자!” 아버지가 말한다. “술에 취해서 못된 장난을 치는 거야, 바보 같은 놈들. 가자, 보지 말고!” 그러고서는 그를 데려가려고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말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간다. 하지만 불쌍한 말은 이미 상태가 나쁘다.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멈추었다가 또다시 몸을 비트는 것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죽을 때까지 갈겨라!” 미콜카가 소리친다. “기왕지사 이렇게 될걸. 제대로 갈겨 주마!”

“아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나, 이 망할 놈아!” 군중 속에서 한 노인이 이렇게 외친다.

“저런 말이 저만한 짐을 나르는 꼴은 본 적도 없군.” 다른 사람이 덧붙인다.

“정말 뒈지게 할 참이야!” 또 다른 사람이 소리친다.

“그냥 내버려 둬! 내 맘이야! 나는 내 멋대로 한다. 더 올라타라! 다들 올라타! 반드시 달리도록 하겠어……!”

갑자기 커다란 웃음이 일제히 터져 나오면서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린다. 암말은 점점 더 거세지는 채찍질을 참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 뒷발질을 치기 시작했다. 노인도 참지 못하고서 히죽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한 것이 저렇게 비실비실한 암말 주제에 뒷발질까지!

군중 속에서 청년 두 명이 또 채찍을 하나씩 얻어와 말을 옆에서 후려치려고 달려든다. 각자 자기가 있는 쪽에서 말이다.

“저년의 낯짝을, 눈을 갈겨, 눈을!” 미콜카가 소리친다.

“자, 노래를 부르자, 이보게들!” 짐마차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짐마차에 탄 사람들이 전부 맞장구를 쳐 준다. 질펀한 노래가 울려 퍼지고 탬버린이 짤랑이고 후렴으로 휘파람이 따라 나온다. 아낙네는 호두를 까며 깔깔 웃어댄다.

…… 그는 말 옆으로 달린다, 앞으로 달려 나간다, 말이 눈을, 눈을 정통으로 얻어맞는 것이 보인다! 그는 운다.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쏟아진다. 후려치는 채찍 하나가 그의 얼굴을 스치지만 느끼지도 못한 채 손을 비비고 울부짖으면서, 고개를 내저으며 이 모든 작태를 꾸짖는, 턱수염을 허옇게 기른 허연 노인에게 달려든다. 한 아낙네가 그의 손을 붙잡고 데려가려 하지만 뿌리치고서 다시 말에게 달려간다. 말은 이미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한 번 더 뒷발질을 치기 시작한다.

“이 망할 것 같으니!” 미콜카가 분에 차서 고함을 지른다. 그는 채찍을 집어던지고 몸을 숙여 짐마차의 밑바닥에서 길고 굵직한 끌채를 꺼내 양손으로 그 끝을 잡고 힘껏 적갈색 암말 위로 휘두른다.

“박살 내겠는걸!” 주위에서들 소리친다.

“죽이겠어!”

“내 맘이야!” 미콜카가 소리치며 있는 힘껏 끌채를 내려친다. 둔탁한 타격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년을 후려쳐, 후려치라고! 왜들 가만히 서 있는 거야!” 군중 속에서 몇몇 목소리가 이렇게 외친다.

미콜카는 또 한 번 끌채를 휘둘러 있는 힘껏 처량한 말의 등을 한 번 더 후려갈긴다. 말은 뒤로 나자빠지며 털썩 주저앉더니만 그래도 펄쩍 뛰면서 일어나 몸을 비튼다, 짐을 끌려고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사방팔방으로 비틀어댄다. 하지만 사방에서 여섯 개의 채찍이 퍼붓고 끌채가 다시 올라갔다가 세 번째로 떨어지고 이어 네 번째로 유려하게 휘둘러진다. 미콜카는 단번에 숨통을 끊어 놓지 못하자 숫제 미쳐 날뛴다.

“끈질긴데!” 주위에서들 소리친다.

“이제는 틀림없이 뻗을 거야, 이보게들, 저년은 이제 끝장이야!” 군중 속에서 신이 난 어느 구경꾼이 외친다.

“도끼로 쳐야지, 어! 단숨에 해치우란 말이야.” 또 다른 사람이 외친다.

“에잇, 주둥이 닥쳐! 비키지 못해!” 미콜카는 광포하게 고함을 지르며 끌채를 내던지고 다시 짐마차 안으로 몸을 숙여 쇠 지렛대를 끌고 나온다. “조심해!” 그는 이렇게 소리치며 최후의 발악을 하듯 불쌍한 말을 후려친다. 일격이 가해지자 암말은 휘청거리며 털썩 주저앉더니 몸을 움찔 비틀려고 하지만, 쇠 지렛대가 또다시 거세게 등을 쿵하고 내려치자 네 다리가 단숨에 꺾인 듯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끝장을 봐야지!” 미콜카는 이렇게 외치더니 앞뒤를 잃은 사람처럼 짐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린다. 역시나 술에 취해 얼굴이 시뻘겋게 된 청년 몇 명이 채찍이든 지팡이든 끌채든 닥치는 대로 손에 쥐고서 숨이 넘어가는 암말 쪽으로 달려간다. 미콜카는 옆쪽에 서서 쇠 지랫대를 들고 하릴없이 등을 후려치기 시작한다. 암말은 얼굴을 앞으로 뻗은 채 괴롭게 숨을 내쉬며 죽는다.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놨어!” 군중이 외친다.

“그런데 이년은 왜 달리지 못했던 걸까!”

“내 맘이라니까!” 손에 쇠 지렛대를 들고 눈에 핏발을 잔뜩 세운 채 미콜카가 소리친다. 서 있는 모양새가 더 이상 때릴 상대가 없어 아쉽다는 투이다.

“자넨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작자군, 알 만해!” 군중 속에선 이미 많은 목소리들이 이렇게 외친다.

한데 불쌍한 소년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비명을 지르며 군중을 뚫고서 적갈색 암말에게 달려가, 숨이 끊어진 말의 피투성이 얼굴을 붙들고 입을 맞추고 그 눈과 입술에 입을 맞춘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펄쩍 뛰고 미친 듯 흥분해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미콜카에게 달려든다. 바로 그 순간, 진즉부터 그의 뒤를 쫓고 있던 아버지가 마침내 그를 붙잡아, 군중 속에서 데리고 나간다.

“가자! 가자꾸나!” 그가 말한다. “집에 가자!”

“아빠! 저 사람들은 왜…… 불쌍한 말을…… 죽여 버렸을까!” 그는 흐느껴 울지만 숨이 막히는 바람에 죄어드는 그의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절규가 되어 버린다.

“술에 취해서 못된 장난을 치는 거야, 우리 일이 아니다, 가자!” 아버지가 말한다. 그는 아버지를 두 손으로 껴안지만 가슴이 죄어 온다, 죄어 온다. 숨을 돌리고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잠에서 깨어난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 말에서 자본주의 사회 하의 어떤 인간상을 보는 것만 같다. 아니지, 정확하게는 작 중에 등장하는 수많은 빈곤층, 더 정확하게는 ‘극빈층’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극빈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지나치게 큰 수레를 끌다가 결국은 뒷발질을 하는, 그리하여 여섯 개가 넘는 채찍 – 사실은 그가 속한 구성원 전체의 채찍을 맞고는 결국은 쓰러져 죽어버리고 마는 – 그러한 운명의 ‘극빈층’이 혹시 이 불쌍한 말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불쌍한 대학생의 꿈 속, 그의 절규는 더욱 절실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기

이렇게나 읽었는데도 아직 총 2권 중 1권의 1/3도 채 다 읽지 못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열심히 읽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제목인 ‘죄와 벌’이라는 것에서 형벌과 관련된 모순들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정작 여기서는 양심 그리고 도덕적 의무와 좌절, 그리고 가난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와 당황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아야 할 것만 같다. 이러한 가난과 범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처벌도 물론 하나의 죄와 벌에 관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의 도덕적 영역에서의 잘못, 그리고 그에 따른 회개와 처벌의 문제란 결국은 보편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생각보다 자주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