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고일기 #7. 2019. 7. 13.

과고일기 #7. 2019. 7. 13.

2019-07-13 0 By 커피사유

과고일기(過顧日記)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과학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 작성한 몇 편의 일기를 옮겨, 과학고등학교 재학 당시의 느낌과 생각들을 되돌아보고 기록해두는 공간입니다.

수과페였다. 하루 종일 보람찼지만 – 한편으로는 보다 처참하고 더없이 지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아침에 지영 클리닉을 정리하고는 10시부터 오전 1파트 아이들을 만났다.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스스로 클리닉에 참여한 아이도 있었고, 별이라는 – 다소 대중들에게 있어는 신비롭고 아득하기만 한 이 마법의 단어 – 에 혹하여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다. 저마다의 생각이 어떠하든 간에, 걸음한 그 작은 발걸음들이 얼마나 고맙던지.

내가 저만할 때 이런 경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라는 지나간 미련에 대한 미련이 들었다. 저 아이들은 일종의 행운을 잡은 것은 아닐까? 어제 문득 고민하였던 나의 작은 철학적 질문과 의문이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에 겹치며, 잠시 멍하니 서있기도 했으나… 그것은 비단 나의 영역은 아니였기에… 한없이 붉어지는 얼굴을 숨기며… 나 또한 가면을 쓰고야 말았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괴로웠다.

내 후배놈들이 클리닉에 떼거지로 몰려왔다. 시간과 인원 조정에 문제가 좀 많이 그 덕택으로 생겨, 내가 나서서 오후 2-3 타임을 병합해서 대규모 인원 수용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얼마 전 – 약 3달 가까이 되기는 하지만 – 내가 한 때 회장으로 있었던 천문동아리는 천문학을 사랑하시는 선생님과 좋은 학생들이 있음에 따라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부회장인 J 그놈 말로는 전파 망원경도 만들기를 시도했다고 하고, 다음 주에는 진주시의 지하상가인 – 최근에 리모델링했다는 보도가 그러고 보니 있었지 – “에나몰”에서 딥스카이 사진전을 연다고도 했다.

그 말이 먼저 거쳐간 한 부족한 선배에 불과했던 – 그러한 보잘것 없는 나 자신으로서는 얼마나 감격스럽고 만족스러웠는지 이루어 형언할 수 없다. 아무래도 천체 동아리다 보니까, 그러한 기분 업과 더불어서, 수준 높은 나의 자랑스러운 후배들을 고려하여, 전반적인 강의의 수준을 올려주었다. 나는 연초에 – 3월, H 선생님과 함께하는 천문학 수업에서 내가 별의 일생 중에 발표했던 그 “블랙홀” 자료를 다시 한 번 우려먹어, 찬드라세카르 한계, 슈바르트-실츠 반지름도 이야기해주었다. S는 배운 내용을 사실상 다 동원해서 이야기했다. 후배 J는 세페이드 변광성으로 거리를 어떻게 구하는지, 그 구체적인 기작을 물었다(질문의 수준이 꽤나 높았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래. 흐뭇했다.

내가 만든 2개의 영상 . 스텔라리움의 내부 스크립트 기능을 남용하여, 72줄 정도의 얼마 안되는 스크립트로 구현하여 촬영, 편집해서 만든 별 볼일 없는, 나의 별의 진화 단계와 황도 12궁에 관한 영상이 오늘 빛을 발했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주변인들이, 사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온 모두와 지구과학 영재학급 학생들이 잘 만들었다고 감탄하며 나를 치켜세워주었는데, 이는 전혀 아닌 이야기이다. 부족한 나의 실력에 다들 과한 칭찬을 해주니 그저 한없이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빌어먹을 수학 I. 14단원 수열의 합 단원을 마침내! 끝내고 수학 II 함수의 극한 단원으로 점프했다. 여전히 이 부분은 개념도 많고 익숙하지 않은 연산이라 시간이 아무래도 오래 걸린다. 어렵지는 않지만 – 계산이 자주 틀리는 것이다. 젠장할. 그래도 언젠가는 고민한 만큼에 대한 보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리를 해야 하는데 KESO 때문에 거의 못하고 수학을 겨우겨우 하는 중이다. 내일 아침 합강 때 또 나는 수학을 해야 하겠지. KESO 끝나고 물리 빡공해야겠다. 젠장.

M의 장학금이 짤렸다. 아침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

이렇게 말하니까 인성이 터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