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24. 어떤 물고기의 응시(凝視)

사유 #24. 어떤 물고기의 응시(凝視)

2021-06-26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어떤 전통 재래 수산시장에서,
물고기와 나


그 물고기의 창백하고 초점없는 눈은 분명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그 물고기는 분명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물고기도 또한 그러했다. 그 옆의 옆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전통재래수산시장의 67번 점포, 주인 아주머니가 사정없이 도마 위로 내리치는 식칼의 반주를 뒤로 하면서, 대야 위에 놓인 물고기들은 6마리 2만원이라는 수식언(修飾言)을 달고 그렇게 힘없이 죽어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 물고기가 이미 그 생(生)을 다하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물고기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사실 이것이 나의 착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이란 ‘그 물고기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라는 진술이 될 것이나 나는 그럼에도 이 문장이 옳다고 생각했다.

문득, 나는 그 물고기가 자신은 1여년도 살지 못한 채 그렇게 죽어서 대야 위에 놓여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태어날 때 분명 자유롭게 바다 속을 헤엄치면서 오대양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지 1여년도 되지 않아 어느 어선(魚船)의 조업에 의하여 그것을 완전히 상실하고, 결국은 명(命)마저 빼앗긴채 그저 힘없이 이제는 대야에 누워 있을 뿐이다, 그 물고기들은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이제는 죽어버리고 말았다 – 나는 물고기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문득 이런 생각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는 이윽고 묻게 되었다. 그 젊은 물고기들은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저 어떤 시대에 어떤 장소에서 태어났다는 것, 바로 그것이 그들의 죄(罪)가 되는가? 바로 그 죄로 인하여 그들은 모든 기회와 목적과 자유, 그리고 영혼마저 빼앗기고 그렇게 이제는 대야 속에 누워서 오로지 다음 심판, 그러니까 아주머니의 단호한 칼질과 내리침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들에게 이제 허락된 유일한 운명은 배가 갈라지고, 그리고 모든 내장이 꺼내진 후, 그저 껍질만 남아 포장되는 것, 바로 그것 뿐인가?

젊은 물고기들의 죄가 바로 그것이라고 해도, 젊은 물고기들은 그 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가? 그들의 죽음은 너무 급작스럽지 않은가? 아니지, 오히려 물고기들은 매우 서서히 그들이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을 줄이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서서히 그 영혼마저 말라 비틀어지고 말았기에 결국은 죽어버리고 말아서는 허연 배를 뒤집고 수조 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대야 위에 올라가는 운명을 맞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물고기들은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역시 아마도 인간의 욕심이 결국 그 생각의 필요를 물고기들로부터, 특히 젊은 물고기들로부터 박탈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문득 그 물고기들과 나 사이에서 어떤 동형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왜 그러한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직관이 그것을 지시했을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 물고기들과 같이 힘없이 대야 위에 죽어서 다음 내리침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고, 그렇게 하여 나의 모든 것을 잃고 가죽만 남긴 채로 삶을 끝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물고기의 창백하고 초점없는 눈은 분명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