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31. 방황하는 자의 고뇌

사유 #31. 방황하는 자의 고뇌

2021-10-04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Cafe 커피사유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그 방향성의 질문에 대하여


늘 그런 한 종류의 고뇌가 가슴 한 켠에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라는 식의 고뇌이다. 아직 청춘의 절정에도 이르지 않은 자가 도대체 무슨 엉뚱한 심보로 이런 말을 하는가라는 식의 반응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고뇌는 엄연한 고뇌이다.

어릴 적 나는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던 아이였다. 어른들의 “무엇이 되고 싶냐?”하는 질문에 대하여 나름의 직업 몇 개 정도는 나열하거나 혹은 그 중의 하나를 말씀드릴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아이. 어린 그 시절의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보통은 ‘과학자’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던 그런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철없고 한참 어리던 시절은 이제 지났고 나는 대학의 강의를 약 반년 정도 들었기는 했으므로, 꿈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한 개인이 장차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기술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야 만 사람들의 한 축에 속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나는 이제 단언컨대 내가 나아가야 하는 길을 다시 찾아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워두어야 할 필요가 점차 절실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예전에 한 번 기술한 바 그 많은 것들에 대한 강력한 식욕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에 속하는 것 같아서, 이제는 어릴 적 던져졌던 그 질문이 다시 던져진다면 몇 가지 음성학적 잉여 표현들과 약간의 쓴 웃음 정도로 얼버무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단지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나아가 나 자신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거시적인 영역을 지배하는, 보다 천천히 변하는 것들을 알고 싶은 욕구에 따라 가고 있는 대학의 한 학도에 불과할 뿐이라서, 이 정처 없는 방황의 길 속에서도 내가 어떤 한 종류의 질서를 발견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떤 것들을 장차 행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여전히 침묵 내지는 가벼운 눈웃음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는 방황자가 따라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대학이라는 삶의 한 길목에서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 대학의 강의가 너무 많은 것을 일러 주었는가, 아니면 대학의 강의가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인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디에서 답을 찾을 것인가?

물론 그 답은 나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함을 나는 알고는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아직도 너무나도 폭넓고 다양한 분야를 조망하면서 끝없는 식욕을 갈구하는 인물이기도 하며, 네 전공이 무엇이니 혹은 네 취업은 어떻게 할 거니 따위의 질문은 뒷전으로 둔 채로 그저 당면한 오늘의 욕구에 따라 그저 펜을 들고서 끝없이 종이 위에 끄적거려가는 인물일 뿐이므로, 너무나도 부족한 경험과 나 자신이라는 사람 위에 도대체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어떤 목표나 꿈 따위를 기술하는 문장을 적어두어야 가장 어울릴지 혹은 바람직할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니 내가 어찌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오래된 믿음에 귀의하고 싶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기다림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나는 여전히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 또 한 번 던지자. “나는 장차 무엇을 하고 싶은가?”, 또는 “나는 내 삶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업을 이룩하며 살고 싶은가?” 따위의 그런 질문들을. 여전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별로 없고 그저 현재의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따위를 조금이나마 부언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 더욱 방황하게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라도 그러한 질문들을 마땅히 던지자. 아직 끝없이 떠오르는 삶에 대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지 혹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지만, 누가 아는가. 수학의 존재성에 관한 정리들처럼 어딘가에 그러한 답이 존재하리라고 하는 강력히 근거지워주는 믿음이 있을 수도 있다.

방황하는 자라도 후일 그가 비틀거리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생각 외로 어떤 하나의 방향성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한 믿음을 나는 애써 스스로의 불안에 대한 위안으로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