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33. 고리와 그에 예속된 학생들

사유 #33. 고리와 그에 예속된 학생들

2021-10-15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Cafe 커피사유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고리’와 그에 예속된 학생들에게


계절은 어느덧 10월이 되었고 대학가는 조금씩 웅성거리고 있다. 해마다 대학의 문을 향해 달려가는 저마다의 학생들이 올해도 다시 또 한 번의 질주를 펼치는 바로 그 계절, 세간에서는 입시철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계절’이라는 용어로 더 지칭하고 싶은 바로 그 시기가 된 것이다. 대입을 치르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생각과 번뇌에 시달리고 있겠으나, 나는 이 즈음의 계절에, 그러니까 해마다 돌아오곤 하는 입시철에 시달리게 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이러한 계절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 학생은 그가 어떤 인물이든지 간에 죽은 것과 다름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나는 누구인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시 이 질문과 사상이 나의 마음 속에서 고동치기 시작할 적이면, 나는 작년 이 때 즈음의 나 스스로가 어떠한 모습이었으며 또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즉, 모든 학생들이 서로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 어쨌거나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 대학 입시라는 것을 바로 앞뒀던 그 당시의, 면접을 앞두고 있는 바쁜 일정의 문은 눈 앞에 당장 열려서 서둘러 달릴 것을 재촉하고 있음에도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며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바로 그 과거의 나 자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분명히 그 때 어떤 이들이 나를 타박하던 그 모든 말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대입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것이라고 타박했었다.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서 버텨내라고 그들은 나에게 강력하게 요구했다. 다른 이들은 죽을 힘을 다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입시와 관련한 현실이므로, 좁고도 좁은 네 앞에 놓인 문 하나를, 모든 이들이 통과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너도 있는 힘껏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말했던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며, 또한 나는 이들의 말이 무한의 고리 속에서 영원토록 메아리치는 와중에도 그저 그 문 앞에 서 있기를 잠시 동안 고집했던 것도 기억한다. 하지만 이윽고 그들이 그들 딴에는 멍청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을, 문 앞에서 계속 서 있기만 하는 나 자신을 봐 주지 않고 떠 밀었으므로 당시의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달려나가면서도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계속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노려보는 그들의 눈매가 너무나도 매서웠으므로, 나는 이 질문을 잠시 불편하게도 한 쪽으로 치워두는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지금의 여기까지 왔으며 이것이 나의 기억의 총체였다.

그러나 내가 그 당시에도 던졌으며 지금도 계속 던질 수 밖에 없는 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형태의 질문이란,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중대한 무게를 지닌 질문이었음을, 아니 그냥 나 스스로의 삶 전체를 대표해야만 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나는 이제야 명백히 알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회상, 그러니까 불행하게도 고등학교 때의 나 자신이 누군가들의 강력한 입김에 휘말려 이렇게나 자명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회상을 다시금 떠올려봄에 따라서, 나는 무심코 대학가가 시끄러워지는 이 10월 내지 11월 즈음에 왜 내가 일련의 생각과 그에 동반되는 모종의 오한을 느낄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왜인지 알 것만 같다.


고등학교의 선생들은 대학이 마치 인생의 첫 번째 주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설교했다. 주변 학부모들도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그 즈음 나는 분명 평범한 경우에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생기는 의식이란 ‘좋은 대학에 가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스스로에 대하여 반드시 물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서게 되어버린 나는 이제 그러한 사상이 광신적이면서도 동시에 미신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즉, 나는 과거 나 자신의 주변에서 영원회귀적으로 회전하던 암송의 영원한 고리는 학생, 교사, 학부모 사이에서 영원토록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면서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유사한 처지에 있던 학생들을 끝없는 암흑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을, 그 희생자들에게 약속한 희망과 그들에게 속삭이는 달콤한 유혹의 말과는 정반대로 결국 그들을 잡아먹고야 마는 괴물과 다름 없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고야 말았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이러한 한 학생이 스스로에 대하여 질문할 기회, 그리하여 본연의 자신을 발견할 기회를 포기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그 고리에 한 때 종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더러운 고리가 붙드는 그 손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소리 질러 외쳐야 함을 이 계절이 돌아옴에 따라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다.

한 개인,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기꺼이 스스로가 나아갈 것 같은 방향은 어디인지. 사실 이런 것들에 대한 질문이 그 끔찍한 곳들에서 던져지는 ‘목표’에 대한 질문들에 선행되었어야 했거나 혹은 그 자리를 대체했어야 했는데, 내가 통과한 그곳들에서는 질문 자체가 이미 잘못되어 있었다. 질문은 “어느 대학에 갈 것이니?”가 아닌, “너는 어떤 사람이니?”가 되었어야 했다. 그것을 바로 학교가, 그 악몽과도 같은 고리의 중심이 가르쳐주어야 했다. 그러나 학교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무책임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최소한 계절은 나에게 그렇게 느끼도록 했다.


이 모든 사상과 과거의 회상이 나를 암울하게도 적셔가는 이 계절, 즉 입시철은 또한 나로 하여금 어떤 한 장의 회색 사진을 상상하게 한다. 그 사진은 분명히 대학 입학 시험을 치러 대학의 교문을 들어가는, 혹은 수능이라고 부르는 고리의 희생자들이 아침에 그 좁은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이상하게도 그 사진에서는 이들 모습이 분리되어 있지 아니하며 각각이 희미하고 또한 중첩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 어떠한 다채로운 색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흑백의 모순적인 사진 속에서, 나는 이윽고 이 수험생들의 얼굴이 모두 지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진을 보는 나를 덮쳐왔던 이 계절의 공포는, 내가 느끼는 공포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무엇이 잘못되었음을 이제는 명백히 알고 있으므로 소리 높여 이를 비판해야 한다고 사진의 색상에 젖어 우울해진 나 스스로를 자극하는데, 하지만 계절의 그러한 도발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비판에 앞서서 그 회색 사진 속에 놓인 얼굴이 지워진 학생들에게 먼저 단 하나의 메시지라도 전달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가장 올바른 질문이 바로 이것 아니던가.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입시생들이어, 질문을 던지시오! 이 회색의 고리에 예속되어 있는 모든 학생들이어, 질문을 던져 스스로를 해방시키시오!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것을 좋아하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 사람인가! 질문을 던지란 말이오, 삶이라는 끝없는 펼쳐진 광야에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그대 나그네들이어!


… 늦었지만 여행자는 자유로워야 하지, 어딘가에 예속되어 있는 존재는 아님을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비록 계절이 나에게 여전히 고리가 존재하며 그에 예속된 학생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끔찍한 사실을 되새김으로써 나로 하여금 과연 이 비극의 고리가 과연 끊어질 수 있을 것인지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함에도 불구하고, 이 불안하고도 우울한 계절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이, 그리하여 나의 이 괴상하고도 잔혹한 상념이 끊어질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고리와 그에 예속된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