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20. 어떤 칼의 처단

사유 #20. 어떤 칼의 처단

2021-05-24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자기 변형의 노인과 그의 칼,
그리고 조용한 여행자


늙은 노인은 그에게 칼을 건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는 이제 어떤 자신에 가득찬 이들이 다가와 자네에게 확고한 어조로 이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이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을 반드시 그 칼로 찌르도록 하게. 그 칼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확신이라는 자기변형에 감염된 맹신을 처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네.”

하지만 그는 받아든 칼의 특유의 무시무시할 정도의 서슬 푸름에 당황하여 늙은 노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칼로 사람들을 찌를 권리가 저에게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람들을 그런 이유만으로 찌른다면 저는 살인자 그 이외의 어떤 것도 되지 못할 겁니다.”

그는 떨면서 말했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노인은 허허 웃으며,

“허허… 괜찮네. 그 칼로 찌르는 이들의 처단의 순간은 자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일세. 물론 그 처단을 타인이나 세상과 함께 행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칼을 아주 잘 쓰는 이들은 우선 그들 속에서의 처단부터 아주 능숙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한다고 하네.”

하지만 여전히 칼의 푸른 빛깔에 등골이 오싹한 그는 여전히 두려웠다.

“저기… 이 칼의 이름이 도대체 무엇인지요?”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선 그가 바로 그 노인에게 물었다.

“칼의 이름, 칼의 이름이라……. 그 어떤 칼이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법이지.”

“… 네?”

반문하는 그의 뒤, 열린 창틈으로 땅거미가 어둑하게 내려 앉아, 마치 그 고을의 곳곳에 내린 죽음의 흔적이 더욱 왜곡된 상으로 더 많은 희생자를 낳기 위해 조금씩 그 날개를 펼치는 듯 했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음을 깨달은 그 조용한 여행자가 노인의 거처에서 나서며 노인을 향해 읍(揖)했다. 여행자는 구름으로 뒤덮여 여전히 어두운 하늘을 조용히 응시하며, 노인의 거처로부터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아, 그리고…”

노인이 멀어지는 그의 발걸음을 불러세웠다.

“… 그 칼의 이름은, 누군가 외자로 짓기를 언(言)이라 하였다고 들었네.”

“… 언(言)이군요.”

칼의 이름을 들은 여행자는 발걸음을 계속 옮기기 위해 발을 떼었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무언가 깨달았는지 뒤로 돌아 그를 바라보고 웃고 있는 노인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그러나 그가 직후 취한 행동이란 바로 있는 힘껏 노인을 향해 그 문제의 칼을 던진 것이었다.

심장을 관통한 칼의 서슬에 노인은 천천히 무너졌다. 그의 선혈이 흘러내려 땅을 조금씩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때, 어둡던 하늘에 조금의 빛이 허락되었는지, 구름이 걷히고 달이 제 모습을 조금이나마 드러냈다.

조용한 여행자는 묵묵히 달과 죽은 노인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