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5. 발생 영역과 대상의 명확성으로 살펴보는 혐오

동상이몽 #5. 발생 영역과 대상의 명확성으로 살펴보는 혐오

2021-11-28 0 By 커피사유

생각을 움직여 다른 꿈을 꾸다. 동상이몽(動想異夢) 시리즈는 커피, 사유의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시사 평론 및 생각 나눔의 장이자, 세상을 향한 이해를 표현하는 공간입니다.

복합적인 혐오에 대한 짧은 분석

다음의 글은 2021학년도 가을학기 서울대학교 대학글쓰기 1 수업의 한 가지 개념에 대한 설명문 쓰기 과제에서 제출한 글임을 서두에 밝힙니다.


 ‘잼민이’, ‘틀딱’, ‘기레기’, ‘여초’, 그리고 ‘개슬람’. 오늘날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는 표현들이다. 노인부터 여성과 외국인,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향하는 이 같은 무차별적인 공격의 표현들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상처를 줄 수밖에 없을 글과 말들이 하나같이 품고 있는 감정, 즉 ‘혐오’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대 문제가 되었으며 사람들에게 그 심각성과 부정적인 영향이 잘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혐오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혐오라는 감정을 지극히 단순한 거부 감각이라고 생각하곤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혐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은 어렵다. 혐오는 단순한 감정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혐오를 ‘어떤 대상에 대한 기피·거부의 감정’이라고 단순히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1

혐오의 정체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카롤린 엠케, 최현철, 강서희가 그러했듯이 우선 혐오가 나타나는 서로 다른 두 영역, ‘감각적 영역’과 ‘관념적 영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전자인 ‘감각적 영역’에서 혐오는 주로 감각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지각한 개인의 생존에 위험이 되는 요소를 기피하고자 할 때에 나타난다. 질병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부패한 음식이나 오염된 물건, 시체나 혈액 등을 볼 때, 또는 이 같은 사물들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 느끼게 되는 거부감이 좋은 예시들이다. 한편 혐오는 생존에 대한 위험이나 기피 요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문화·종교적 맥락에서 비롯된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과 믿음과 같은 관념이 개입하여 발생할 수도 있다. 바로 이 경우가 ‘관념적 영역’에서 혐오가 나타나는 경우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는 ‘관념적 영역’에서 혐오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동성애자의 존재는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험을 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녀 간 결합과 가정의 구성을 강조하는 기독교 등에서의 전통 교리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인식 틀’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느낀다.2

혐오는 그 대상이 명확한 경우도 있으며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3 혐오 대상의 명확성은 혐오가 어떤 영역에서 나타나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서 제시한 ‘감각적 영역’의 경우 주로 혐오는 그 대상이 구체적인 한 사물 또는 개인을 향한다. 이를테면 부패한 사과를 볼 때에 느끼는 혐오감은 정확히 그 사과를 향하지, 사과가 아닌 다른 대상을 향하지는 않는다. 반면 ‘관념적 영역’의 경우, 혐오의 대상은 구체적인 사물이나 개인이라기보다는 집단화된 표상이다. 이를테면 외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는 개별적인 외국인 이민자들의 행동, 사정 등을 일절 고려하지 않으며 또한 이들 각각을 향하지 않는다.4 온라인상에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저연령층, 이른바 ‘잼민이’에 대한 혐오에서도 개인의 개별적 특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관념적 영역’에서 혐오의 화살은 특정인이 아닌 추상화된 집단을 향한다. 즉, 화살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어 공동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불특정 다수의 외국인 이민자들, 그리고 인터넷에서 무리한 요구나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내용을 담은 댓글을 다는 불특정 다수의 ‘잼민이’들을 향한다.

오늘날 혐오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과 그 심각성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혐오가 가진 복합적인 측면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혐오를 어떤 대상에 대한 거부 감정으로서 단순하게 이해하기보다는 앞서 언급된 혐오가 가지는 다양한 측면들을 고려하여 복합적인 감정으로서 이해하여야 한다. 더는 부당하게 대우받거나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은 혐오를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하며,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혐오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들을 논의해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강서희, 〈혐오 정서에 대한 서사교육의 방향 탐색〉, 《새국어교육》 124, 한국국어교육학회, 2020, 181-211면.

 배영주, 〈민주시민의 ‘혐오 다루기’와 교육의 과제: M.Nussbaum과 H.Arendt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연구》 15.1, 한국문화교육학회, 2020, 51-71면.

 최현철, 〈혐오, 그 분석과 철학적 소고〉, 《철학탐구》 46, 중앙대학교 중앙철학연구소, 2017, 175-199면.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정지인 역, 서울: 다산북스, 2017.[Carolin Emcke, Gagen Den Hass, Frankfurt: S. Fischer Verlag, 2016.]

주석 및 참고문헌

  1. 배영주, 〈민주시민의 ‘혐오 다루기’와 교육의 과제: M.Nussbaum과 H.Arendt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연구》 15.1, 한국문화교육학회, 2020, 53면.  강서희, 〈혐오 정서에 대한 서사교육의 방향 탐색〉, 《새국어교육》 124, 한국국어교육학회, 2020, 186면.
  2.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정지인 역, 서울: 다산북스, 2017. ‘본원성 / 본연성’.[Carolin Emcke, Gagen Den Hass, Frankfurt: S. Fischer Verlag, 2016.]
  3. 카롤린 엠케, op. cit., ‘증오’.
  4. Ibid., ‘혐오와 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