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9. 범죄로 뒤덮인 이야기에 대한 투정

사유 #9. 범죄로 뒤덮인 이야기에 대한 투정

2021-01-05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이번 글은 경남과학고등학교 문학 2020학년도 수행평가로 진행되었던 掌편소설들 중, 눈, 귀, 입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고 든 생각을 기술하였음을 서두에 알립니다. 저작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소설의 원문을 제공해드릴 수 없다는 점,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늘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무언가 모를 불편함을 하나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비슷비슷한 소설이지만, 그래. 어쩌면 내가 죄다 비관적인 절망의 소설만을 학교에서 읽어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죄다 이상하게도 나는 소설에서 뭔가 그렇게 기분이 썩 놓지 않은, 무언가 상한 듯한 그런 고약한 냄새를 지속적으로 맡아왔던 것이다.

소설이 원래 어떤 인물이 절망적, 혹은 순화하여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가를 그리는 것이라고들 한다는 말을 여느 소설가가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그런 고약한 냄새가 소설의 근간이자 결코 지울 수 없는 본성일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고약한 냄새의 근원은 나는 지울 수 있다고 확신하는 탓에 그렇다면 아마 있을 것이다.

문제는 소설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절망’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소설들이 주로 그 ‘절망’을 보여주기 위해 종종 택하는 ‘방법’인 ‘범죄’에 대한 이야기에 내가 질린다는 것일 뿐이다.

연애라고는 한 번도 못해본 사람이라 연애류의 소설도 싫어하고, 그렇다고 마냥 흔히들 말하는 이세계물이라던가 ‘~였던 건에 관하여’ 따위의 제목을 가진 라이트 노벨에도 그렇게 흥미가 없는 나라서 그런지, 워낙 이런 종류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소설들이 나에게 ‘절망’을 보여주기 위해 아직 보호된 곳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범죄’라는 요소가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설은 이제 너무 질린다.

원래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있고 별의별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느끼게 해준 소설들이 아직도 그러한 이야기를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 이제 나에게는 마치 실없는 잔소리의 가치 그 이하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한 때는 소중하게 느껴졌던 가치도, 어디선가 되풀이되어 그 가치가 본연을 상실하고 진부함의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 누구나 그것을 향한 흥미를 상실해버리는 법이니까.

왜 대중에게 사랑받는, 혹은 잘 팔리는, 혹은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소설들은 – 내가 문학 수업 시간에 봐 온 그런 소설들은 – 왜 다들 ‘범죄’라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요소들을 사실상 필수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연 나의 문학 선생님의 취향일 뿐이기만 한 것일까, 아니면 이것은 전체 대한민국 문학계의 이상한 현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그런 문제 중 하나인 것일까.

소설을 읽은 경험이 아직 너무 적고 아직 나 자신이 살펴보아야 할 지성의 지평은 너무나도 광대하기 때문에, 나는 결론을 섣불리 나 스스로가 내릴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권리는 적어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한다. 의심되는 것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기는 싫다. 이것이 내가 모든 글을 쓰는 본연이자 이유이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을 나는 상상해본다. 분명히 존재하는 소설이며, 나 또한 바로 창작할 수 있을(그러나 당연히 그 질을 보장할 수는 없을 거고) 종류의 것이라 생각되지만, 대중적으로 ‘명작이요’ 하면서 나선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그런 소설.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일상에 기초하여, 그 속의 작은 것들에 집중하는 소설. 멀리, 큰 세계를 구축할 필요도 없고, 거대한 운명, 거대한 절망 그런 것 모두 필요 없으니, 일상 속에서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한 소설을. 그러한 소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 나로써는 너무나도 이상하다. 아니, 베스트셀러 목록에 굳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런 소설을 내가 아직 그렇게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이 너무 이상하다.

요즘 다른 영화와 같은 다른 문학 장르 중 인기를 끄는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 소설마저도 범죄라는 스릴러적 요소에 점차 잠식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요즘이다. 나는, 그저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깨달음을 얻는 그런 평범한 것들이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