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비록 #2. 루쉰의 『광인일기』에 대하여

청비록 #2. 루쉰의 『광인일기』에 대하여

2021-07-03 0 By 커피사유

청비록(聽飛錄)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공개 강연 등을 듣고 나서 든 생각과 의견을 갈무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만의 생각과 강연에서의 생각이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의 공간입니다.

공지문(公知文)

지난 번 청비록(聽飛錄)을 쓴 지 한참이 지났다. 3월에 쓰고 같은 해 7월인 지금에서야 두 번째 청비록을 쓰고 있으니 한참이어도 꽤 한참이기는 하다. 사실 처음에 청비록을 쓸 때에는 나는 이 시리즈(Series)를 그냥 내 강의록을 올려 기록해두는데, 그냥 강의록만 올리면 뭣 하므로 나의 생각을 붙여두는 글들을 모아 두는 형태로 구성해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문제는 그 강의록을 쓸 수 있는 강의가 몇 되지 않았던 까닭이 있었다. (사실 꽤 있기는 했지만 내가 안 들은 것과 못 들은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서울대학교 고전 100선 수업의 네 번째 강좌로 루쉰(鲁迅)1의 『광인일기(狂人日記)』의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나 스스로에게서 많은 것들이 떠오르게 되면서 아무래도 이 강의록은 좀 어딘가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에 그 강의록을 옮겨두려고 하는데, 솔직히 지난 번 첫번째 청비록의 경우는 그 일일이 옮기는 것이 좀 귀찮아서 pdf의 형태로 강의록을 달아두었지만, 여기에서는 pdf의 형태로도 물론 달아두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본문에 그 강의록을 내가 재구성하여 좀 덧붙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pdf와 본문에서의 강의 내용에 대한 기록의 양립은 아무래도 이 시리즈 청비록(聽飛錄)의 기본 형태 변경으로 간주하여야 할 듯 싶다. 즉, 추후에 청비록을 더 쓸 일이 생긴다면, 오늘의 글을 출발로 하여 계속 글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강의록을 본문에 모두 수록하려고 한다.

서문(序文)

처음으로 내가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들어보게 되었던 것은 사실 이 글을 쓰는 발단이 되는 서울대학교의 공개 교양 강좌 ‘서울대 고전 100선’ 수업이 아니었다. 이 수업이 있기 전, 1학기 때 인문 교양의 강좌로 수강하였던 강우성 교수님의 ‘문학과 철학의 대화’에서 읽은 김현경 선생님의 『사람, 환대, 장소』의 제6장 「절대적 환대」가 처음 들어보게 된 순간이었다. 김현경 선생님께서는 그 글에서 절대적 환대의 제2조건인 ‘대가를 바라지 않는 환대’를 이야기하시면서 유교 문화의 ‘대가를 바라는 효(孝)와 충(忠)’을 지적하시고자 이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제시하고 계셨었다.

그렇게 먼저 접한 이 루쉰의 작품에 대한 분석틀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제대로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과 이를 통하여 내린 최초의 결론이란 결국 그 분석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나는 처음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이 작품의 서사를 ‘유교에 대한 비판’이 주 서사인 것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이번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전형준 교수님의 귀중한 강연에서 나는 사실 이 분석틀이 아닌, 새로운 어떠한 시각으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더 고취적인 것이어서 나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어떤 한 질문, 그러나 전혀 이 작품과는 연계하여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한 질문이 사실 루쉰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읽기에서는 이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유효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깨달음에 의하여 매우 강하고 귀중한 인상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이 귀중한 감각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내가 교수님의 강의에서 들었던 각종 내용들과 논의 사항들을 기록해두려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나의 깨달음에 연계되어 있는 어떤 한 질문을 제시함으로써, 이 『광인일기(狂人日記)』라는 작품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상세히 기록해두기로도 한다.

청비록(聽飛錄)

I.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읽은 조들의 토의내용을 살펴보며
I – 1. 『광인일기(狂人日記)』가 보여주는 식인(食人)에 대하여

『광인일기(狂人日記)』는 식인(食人)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킨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아무래도 이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 ‘식인’이라는 단어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대외적인 문제인지 내부적인 문제인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강좌에서는 작품이 쓰일 당시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것이다. 둘째로는 그 식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는지,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는지도 물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부분에 대해서 잠깐 논의하자면, 식인이라는 행위는 사실 현실에서 무인도나 어떤 극한 환경에 고립된 경우 식인의 역사가 있었다는 점(실제로 사람을 먹을 수도 있다는 점 /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식인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직접적으로 식인, 즉 사람을 먹는다는 표현일 수도 있으나, 식인이라는 행위 자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중대한 피해를 끼치는 것이므로 이 작품에서의 식인은 간접적인 표현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I – 2.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읽는 새로운 시각들

조 논의 내역을 살펴보니 다음의 새로운 시각들이 제안되었다.

  1. 『광인일기(狂人日記)』가 사실은 공포 소설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즉, 이 작품의 서사를 실제로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는, 실제로 형이 동생을 잡아먹고, 동생을 찾아온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2
  2.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광인(狂人)은 서문에서 제시된 것처럼 피해망상증에서 완쾌되어 어느 지방의 후보로 간 것이 아니라, 사실 나은 척을 하면서 간 것이 아닐까? 그러면 후보로 떠난 그 주인공은 아직도 미쳐 있는 광적인 상태일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시각은 훌륭하며 나름의 근거를 갖추고 있어 모두 좋은 해석이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쓴 루쉰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 작품이 이런 뜻으로 읽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언하셨다. 하지만 이런 말도 부언하셨다. 작품의 해석이 반드시 저자의 의도와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독자들이 그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 또한, 훌륭한 문학 작품을 읽는 방법이라고.

II. 『광인일기(狂人日記)』과 유사한 동시대(同時代)의 작품들과의 비교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유사한 동시대의 작품으로는 고골의 『광인일기』, 톨스토이의 『광인의 수기』, 모파상의 『오를라』가 있으며, 이들 각각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II – 1. 고골의 『광인일기』

고골(1809-1852)의 『광인일기』는 1835年 作으로, 이 작품의 줄거리란 42세 독신남(쉽게 말해, 모태솔로)인 하급관리(관료주의 속에서 만년말단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관리)가 미쳐가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가난한 하급관리는 과대망상증이 점차 심해지면서 미쳐가는데, 처음에는 애완동물과 대화를 하는 정도였다가 이윽고는 자신이 모시는 국장(局長)의 딸을 짝사랑하더니,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이 스페인 국왕이라 생각하게 될 정도로 심각해진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이것으로 작품의 서사가 막을 내린다.

이 작품을 루쉰이 읽고 논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만큼, 아마도 루쉰은 이 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는 추정된다. (이 작품이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보다 먼저 발표되기도 했고) 다만,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는 이 작품과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II – 2. 톨스토이의 『광인의 수기』

톨스토이(1828-1910)의 『광인의 수기』는 1884년에 그가 집필하였으나 미완인 상태로 그의 죽음 이후 1912년에 유고작으로 발표된 작품이다. 이 글에는 톨스토이와 유사한 인물, 즉 어떤 귀족3이 매물로 나온 영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떠난 여행 중에 (광기적인) 발작을 시작하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귀족은 흰색 호텔 방에서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는데, 그는 이 방에서 자신이 옛날에 하얀 눈밭에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모종의 사고로 죽음의 공포에 대면한 경험을 떠올린다. 작품은 그가 속죄의 기도를 올린 뒤4, 영지 구입을 포기하고 교회 앞의 걸인들(부랑자들)에게 가진 돈을 모두 나눠주는 것으로 미완결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너무 톨스토이의 모습과 유사하므로, 아마도 톨스토이가 직접 겪은 일에 기반하여 이 작품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출판연도를 고려하면 루쉰은 이 작품을 읽지 못하고 그의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II – 3. 모파상의 『오를라』

모파상(1850-1893)의 1887年 作 『오를라』는 이전에 썼던 동명의 작품을 일기 형식으로 개작(改作)한 것으로, 서사는 Le Horla5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로 미쳐가는 신경쇠약증에 걸린 상류층 환자의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시작하는데, 주인공은 이 존재가 분명 자기 바깥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자기 안에도 있다는 인상을 토대로 그 존재를 Le Horla라고 명명하고, 결국 이 존재를 죽이기 위해서 본인의 집에다가 불을 지르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마지막에 그가 일기에 저 Le Horla를 죽이려면 내가 죽어야만 하겠다라고 쓰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II – 4. 세 작품과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와 똑같이 어떤 광인(狂人)을 다루는 이 3개의 소설을 루쉰의 작품과 비교해보자.

우선 이 3개의 소설들은 환상적인 세계(판타지)를 기술하지 않고 현실 세계를 기술하는, 즉 모두 사실적인 것을 기술하는 사실주의 소설이다.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도 사실적인 것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는 우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솝 우화를 생각해보자. 동물이 말을 하고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게으름’과 같은 추상적 존재가 인물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 현실적인가?)

한편, 서사의 결말의 형태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중점으로, 그리고 이 사람들의 일생에 대한 짧은 고찰을 토대로 네 작품을 비교해보자.

우선 고골과 모파상의 광인(狂人)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은 그 정신병이 심각해져서 종결되고,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속죄를 통해 정신병이 완화되어서 종결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한편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는 서문을 고려해보면 정신병은 종국에 치료되었다는 형의 말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형의 발화를 믿는다면 정신병은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분석한 정신병의 경과를 따라 작품을 두 부류로 분류하면, 우선 고골과 모파상의 이야기는 정신병이 심각해져서 끝난다. 근데 참으로 기가 막힌 사실은 고골과 모파상은 이 자신들이 썼던 광인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과 비슷한 형태의 결말을 맞는다. 고골과 모파상은 모두 스스로의 정신병이 심해진 끝에 죽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어쩌면 고골과 모파상의 광인에 대한 이야기에는 저자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부언하셨다. 자서전과 완전히 자전적이지 않은 작품 사이에 있는 이 자전적 작품들에는 작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넣되,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그리하여 고골과 모파상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인물을 그리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은 것이 아닐까라고 말씀하셨다.

반면 제2부류에 속하는, 즉 서사가 모두 정신병의 완화 또는 개선으로 종결되는 톨스토이와 루쉰의 경우는 저자들의 말로도 굉장히 대조되는 구석이 많다. 우선 톨스토이의 경우는 말년에 계몽주의 운동을 정말 헌신적으로 주도하여, 이른바 「톨스토이 운동」이라는 운동을 만들어내고 사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만들었다.6 한편 루쉰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평생에 걸쳐 계몽운동에 헌신한 사람인데, 그는 젊었을 때에는 단순한 계몽주의 사상을 외쳤지만 말년에는 좀 생각이 바뀌어서 사회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서사 전개에 대한 작가의 투영의 측면에서 보자면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거의 자신을 드러내다시피 하며 작가를 아주 많이 투영하다시피 썼다고 평가되지만,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는 자신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투영되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톨스토이와 고골, 모파상의 중간 정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읽어내기가 조금 더 어려워지는 경향도 있으니 말이다.

중국 문학자들은 한때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의 결말, 즉 관리가 되어 정신병이 치료된 것을 두고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을 그렸다고 보았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선언하셨다. 교수님께서는, 톨스토이와 비교한 이상의 결과를 토대로 고찰해볼 때, 서문의 문제의 부분을 루쉰이 평생에 걸쳐 한 ‘계몽운동’으로 확장되는 부분이라고, 그러한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하고 제안하셨다.7

III. 루쉰의 또 다른 작품들과 『광인일기(狂人日記)』의 비교

루쉰은 이 『광인일기(狂人日記)』 외에도 1919年 作 『약』이라는 단편을 이어 발표하기도 했으며, 또한 철옥자(Iron Room)이라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다. 이 이야기들과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연관지어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III – 1. 루쉰의 『약』과 『광인일기(狂人日記)』의 비교

루쉰의 1919年 作 『약』이라는 단편 소설은, 찻집을 경영하는 가난한 자영업자 부부가 있는데, 그 집 아들이 폐병에 걸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당시에는 의약 기술의 부족으로 약이 없어서, 폐병에 걸린 이들은 대부분 죽었었는데, 이때 당시 전해지던 민간 요법에는 사람의 피를 먹이면 폐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있었다. 이에 따라 부모님은 아들을 치료하고자 망나니에게 돈을 줘서, 사형장에서 참수를 시킬 때 나오는 피를 받아 큰 만쥬(찐빵)에 적셔 아이에게 먹인다. 그러나 폐병이 나을 리가 없어서, 아이는 죽어 공동묘지에 묻힌다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죽음도 있지만, 그와 다른 한편에서 전개되는 샤위라는 인물에 대한 서사도 있다. 그는 반청(반-청나라) 정서를 가진 인물이어서, “이 청나라의 천하는 우리 모두의 것”8이라고 말했다가 옥리 아이9에게 따귀를 맞고 옥고를 치르다가, 결국 사형당해서 그 피가 문제의 아이가 먹은 만쥬에 적셔진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이 폐병으로 죽은 아이와 처형당한 이 샤위라는 인물의 어머니, 즉 두 어머니가 우연히 동시간대에 두 사람이 묻힌 공동묘지에 와서 마주치는 장면이 등장하여 작품이 마무리된다.

『약』의 장면 중에서는 부모가 운영하는 찻집에서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수군거리는 장면이 있다.

“아이10가 불쌍하다구11……. 미친 소리, 완전히 미쳤군.” 희끗희끗한 수염이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쳤어.” 스무 살 남짓한 사람도 문득 크게 깨달은 듯이 말했다.12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샤위는 단지 시대를 앞섰던 것 뿐이며 미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주권 사상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치지 않았던 샤위를 보면서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미쳤다고 하고 있었다.

반면,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미쳤다고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마저도 스스로가 미쳤다고 말했었으며, 병이 나은 뒤에는 자신이 미쳤던 것을 되돌아보기까지 한다.

이 지점이 루쉰의 『약』과 『광인일기(狂人日記)』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II – 2. 루쉰의 철옥자(Iron Room) 비유와 『광인일기(狂人日記)』의 비교

루쉰이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근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비유라고 평가받고 있는 루쉰의 『철옥자(Iron Room)』 비유는 루쉰의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이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고찰이 반영된 시대적 비유로 유명하다.

철옥자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창과 문이 없고, 각 면이 두꺼운 철판으로 된 육면체의 폐쇄된 방이 있다. 이 안에 사람들이 갇혀 정신을 못 차리고 마비된 상태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방 바깥의 누군가가 그런 마비된 이들을 깨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런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모르는 채로 죽겠지만, 깨우면 고통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이 방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기 때문에.

현재 많은 이들은 철옥자의 비유를 루쉰이 당시 서양 열강의 중국 침략 시기인 시대적 상황에서 중국의 ‘계몽’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철옥자에서는 깨어 있는 사람, 즉 각성자 자신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거나,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고 있는데, 방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마비되어 사실상 죽어있다는 대립 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이 철옥자의 관찰자는 사실 체계 바깥인 철옥자의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계몽주의의 한계를 시사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계몽주의는 스스로를 각성한 자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지 않아(정확히는 다른 생각들은 철옥자 내부의 마비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탄압했고, 결국 탄압으로 이어지는 실패한 계몽주의의 사건들이 되풀이된 바가 있다.

이처럼 철옥자의 각성자는 체계의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체계에서 자유로운 존재이나, 『광인일기(狂人日記)』 그리고 『약』에서의 광인 그리고 샤위는 체계 안에 갇혀 있으며, 아래에 매여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두 이야기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철옥자의 비유는 루쉰이 중화민국 정부가 북경으로 이사를 갈 때 따라가서 교육부 대리로 일하면서, 세상과 연을 끊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고전 탁본을 모으고 연구를 하며 살다가, 1915년부터 나온 신청년(新靑年)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후배 중 1인이 찾아와 글을 좀 쓰라고 종용할 때 했다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13 루쉰이 어느 소설집의 서문에, 그 철옥자를 그가 후배에게 이야기하였을 때 후배는 그래도 그 철옥자 속의 사람들을 깨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쓰기는 했으나, 사실 가식이나 핑계가 아닐까 싶다고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IV. 두 개 혹은 세 개의 자아와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개 혹은 세 개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1. ‘실재적 자아’와 ‘잠재적 자아’:
    반성하는 자아(서문의 나, ‘미치지 않은 상태’)와 반성되는 자아(일기의 자아, ‘미친 상태’)의 구도로써 이 글을 볼 수는 없을까? 서문의 나가 ‘일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반성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글이 우화는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알레고리의 형태로 말이다.
  2. 그리고, 그 두 자아를 관찰하는 ‘예술적 자아’:
    이 자아는 두 자아를 동시에 보면서 두 자아를 소설로 동시에 서술하는 자아이다.

이 둘 혹은 세 자아에 대한 발견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할 수 있다.

  1. 사실 세 자아는 한 사람이 아닐까?
  2. 질문 1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이면, 그 사람을 루쉰 자신이라고 하자. 루쉰 자신과 이 소설의 해석 프레임을 연결짓는다면, ‘반성’이란 무엇에 대한 반성인 것일까? (루쉰의 소설은 물론 자서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루쉰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미친 상태가 치유되었다는 것은, 사실 이러한 각성 상태의 성숙으로, 그리고 후보로 갔다는 소설의 정보 제시는 어쩌면 새로운 실천 방법의 모색으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V.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진짜 사람은 누구인가?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동생은 형에게 벌래에서 물고기, 새, 원숭이, 진짜 사람으로 진화한 이야기14를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을 먹지 않은 사람들은 벌레에서 진짜 사람으로 진화했고, 계속 사람을 먹은 사람들은 여전히 벌레입니다.”

“사람을 먹는 사람은 사람을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겠습니까.”

이상은 분명히 논리가 이상한 문장이기는 하다. 사람을 먹었든 먹지 않았든, 전부 사람으로 진화는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해되기는 하는 문장이다.

한편,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동생은 구경꾼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많이 낳아도 당신들은 진짜 사람들에게 멸망당할 겁니다. 사냥꾼이 늑대를 모두 잡아 죽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들은 고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치십시오!”

“당신들이 고치지 않으면, 당신 자신들도 결국은 다 잡아먹히고 말겁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광인일기(狂人日記)』가 이 부분 이전까지는 ‘주인공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 즉 일기에 충실한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에 들어서서 주인공이 아닌 타인을 향한 이야기의 발화가 되어버리면서 해석을 복잡하게 만든다. 즉, ‘내적인 이야기’의 서사가 유지되다가 이 부분에서 ‘대외적인 이야기’를 해버렸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근데 이 부분은 당시 서양 열강의 중국 침략이라는 시대적 맥락이 고려되면, 마치 서양 사람들은 ‘진짜 사람들’ 그리고 동양 사람들은 ‘벌레 상태의 사람들’이라는 제국주의적 침략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는 논리가 숨어 있는 대목이라서 좀 위험하기도 하고, 실제 연구에서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냥 어떤 절박한 절규의 부분, 중국의 근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절규라고도 볼 수는 있다. 그래도, 여전히 비유가 좀 묘한 구석은 있어서, 여전히 제국주의의 비판이라는 측면에서는 『광인일기(狂人日記)』에 대한 약점으로 이 부분이 취급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부분 이외의 측면은 거의 대부분 중국 내의 내부 식민(지배자들에게 좋은 사회 룰)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이 부분을 다루시면서 카프카의 1912年 집필, 1915年 발표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이 1918年 作 『광인일기(狂人日記)』를 함께 생각해볼 것을 권하셨다. 『변신』이 주인공 그레고르가 인간에서 벌레로 변하는 이야기임을 다시 떠올려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VI.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의 번역에서의 몇 가지 문제점

교수님께서는 이 『광인일기(狂人日記)』의 작품의 번역에 참여하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 20년 동안 논쟁의 대상으로 번역에 있어 고민해오던 두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VI – 1. 서문, 그리고 제1장의 첫 문장의 의역에 대한 문제

루쉰은 이 『광인일기(狂人日記)』라는 작품을 1918년 5월 초에 「신청년(新靑年)」이라는 계몽주의적 잡지15에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광인일기(狂人日記)』의 제1장 이전의 부분을 ‘서문’이라고 부르는데, 실제 많은 독자들이 원작에도 ‘서문’이라고 장제(章題)가 달려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루쉰의 초기 발표작을 보면, 단지 소설의 맨 앞에 한문의 6줄이 붙어 있을 뿐이고, ‘서문’과 같은 제목은 붙여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 ‘서문’이라고 그 부분을 편의상 부를 뿐이지, 원작에는 그런 제목은 없었다.

그리고 루쉰의 초기 『광인일기(狂人日記)』 作에서 제1장의 첫 문장, 흔히 한국어로 의역되기로는 ‘오늘 밤은 달이 참 좋다’는 사실 중국어문 상으로는 완성된 문장은 아니라고 교수님께선 말씀하셨다. 단지 의역을 할 때에 보통 완전한 문장으로 의역해버릴 뿐이라고, 교수님께서는 이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VI – 2. “진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에 대한 번역의 문제

교수님께서는 다음 문제의 부분에 대한 중국 원문은 두 가지 측면의 해석이 열려 있다고 말씀하셨다.

(한국어 번역본) “사천 년의 식인의 이력을 가진 나는,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이제는 알겠다. 진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영어 번역본) How can a man like myself, after four thousand years of man-eating history – even though I knew nothing about it at first – every hope to face real man?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두 가지 측면으로 열려있는 해석들이란 다음과 같다고 하셨다.

  1. 진짜 사람을 만나기가(보기가, 발견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진짜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2. 진짜 사람을 만나기가(대면하기가, 마주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부끄럽기 때문(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1번 해석을 이 문장에 대한 해석으로 떠올린다. 그러나 분명히, 2번 해석도 말이 된다. 사람을 먹는 사람은 사람을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부끄럽겠는가!16

교수님은 개인적으로 2번 해석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즉, 처음에는 그가 스스로가 사람을 먹는 사람인줄은 몰랐는데,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다음의 질문을 이윽고 던지셨다. “루쉰 자신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은 중의적 문장을 기술하였는가?”

VI – 3. “아이들을 구하라”에 대한 번역의 문제

또 다른 번역이 난해한 부분은 바로 이것이라고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국어 번역) “아이들을 구하라(구해라, 건지자)”

(영어 번역) “Save the children”

문제는 이 부분의 옮김이라기 보다는, 원문의 이 문장을 어떤 느낌으로 옮겨야 하는가라고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즉, 이 부분을 이를테면 연극 극본으로 옮길 때, 이 부분은 큰 소리로 옮겨야 하는지, 아니면 작은 소리로 옮겨야 하는지, 남에게 하는 말로서 옮겨야 하는지, 아니면 혼잣말로 옮겨야 하는지…… 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 중 하나로 번역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구하라….” “아이들을 구해라….” “아이들을 구하자(건지자)….” “아이들을 구해야지….” “아이들을 구해야 할 텐데….” “아이들을 구해야 하는데….”

VII. 루쉰의 삶과 『광인일기(狂人日記)』

이 소설의 작가인 루쉰(1881-1936)은 평생 당시 중국의 혼란스러운 정국 속 지식인으로서 계몽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1881년 절강성 소흥이라는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02년부터 1909년까지 日本에서 의학 전공으로 유학을 했다. 그러나 그는 1906년에 환등기17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사건이란, 러일 전쟁이 끝난 직후였던 당시 여름 또는 가을 즈음에, 그가 공부하던 일본의 대학에서 환등기로 슬라이드들을 보다가 러일전쟁의 승리를 선전하는 내용이 나왔는데, 하필이면 그 내용이 중국 사람 하나가 앉아 있고 그 옆에 칼을 든 일본군이 그 중국인의 목을 치려 하고 있고, 그 바깥에는 일본군이 총을 들고 둘러서있고, 다시 그 바깥을 중국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꾼 형태로 있는 그림이었는데, 그 설명이 러시아군의 스파이 노릇을 한 중국 사람을 간첩죄로 처형하는 장면이라는 것이었다. 루쉰이 회상하기로 혹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시 일본 학생들은 이른바 ‘국뽕’에 취해서 난리가 났는데, 중국 출신의 유학생이었던 루쉰은 충격을 강하게 먹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그 경험에서 그 그림에 등장하는 구경꾼 중국인 대중들을 정신이 마비된 사람들이라고 강하게 느껴서, 자신은 의사를 할 것이 아니라 마비된 정신을 치료하는 일에 뛰어들어야 겠다고 생각하여 의대를 중퇴한다. 그리고 그는 문화운동에 투신하여 각종 평론과 번역을 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계몽 잡지인 「신생(新生)」을 펴내고, 각종 계몽적 소설과 책을 펴내기도 하지만 모두 크게 실패하고 좌절한다.18

그는 1909년에 귀국한 이후, 항주의 절강양급사범학당 교사에 이어 소흥부중학교 교감을 지내면서 1911년 신해혁명 당시 학생들을 모아 혁명군 조직도 하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결국 지쳐서 급진적 계몽을 포기해버린다. 그는 1912년 2월, 중화민국의 남경정부의 교육부 직원(지금의 ‘대리’ 자리인 ‘첨사’)으로 취직하였다.19 그는 중화민국 정부의 북경 천도와 함께 가족을 남경에 두고, 북경으로 홀로 이주하였는데, 앞서 기술한 바 있는 것처럼 소흥회관이라는 곳에 별채 하나를 얻어 독신 생활을 하며, 고대 석문 수집 및 연구에 몰두하면서, 진정으로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그는 1918년 철옥자(Iron Room) 일화를 발하고,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집필하고 발표하였으며, 이후 그는 그의 성숙해진 계몽운동을 이 발표 이후 쭉 이어간다.

교수님께서는 다음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1. 루쉰은 성장했고, 변질되지 않았다.
  2. 단편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는 어쩌면, 루쉰의 과거 미숙했던 ‘혁명’ 또는 ‘계몽’ 운동을 반성하는 서사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VIII. 『광인일기(狂人日記)』 강의록 첨부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 강의에 대한 강의록 PDF 파일을 말미로 달아 둔다.

발문(跋文)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에 대한 이 청비록의 서문에서 나는 ‘어떤 한 질문’에 대하여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이제 그 질문을 공개해야 할 것 같다. 그 질문은 바로, “진정한 계몽의 방법이란 무엇인가?”이다.

물론 계몽이라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오작동의 부작용이 명백히 존재하며,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기는 하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상의 발전의 근본이 되는 ‘모든 논의는 열려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의 파생적 성격의 다른 사상(思想)인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말에 대하여 합리적인 근거 및 논거를 들어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아주 명백한 공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서 최근 들어 ‘계몽’의 방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굳이 계몽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사회의 움직임인 ‘혁명’에 대해서도 나는 관심이 있기 때문에20 나는 “진정한 계몽의 방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나의 질문은 사실 “혁명의 올바른 방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질문을 떠올렸기 때문에, 루쉰의 고민이 어쩌면 나에게 꽤 많은 힌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꿈꾸고 있는 불가능한 꿈이란 사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개입된 것인데, 나는 이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주변의 원색적인 비웃음과 비난, 그리고 각종 사(史)들을 통해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위험한 생각을 내가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물론 알고 있다. 지금의 이러한 생각이 오히려 루쉰이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쓰기 이전에 주장하던 급진적인 생각들, 즉 뜨겁고 젊은 피로 인하여 발(發)한 것일 수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이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더욱이 중대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른들이 말하는 “그렇게 데모를 해 봐야 바뀌는 게 없다”라는 것이 사실은 ‘계몽’이나 ‘혁명’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가리키는 문장이 아닌, 올바른 ‘계몽’이나 ‘혁명’을 가리키는 문장을 지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루쉰의 사상(思想)과 『광인일기(狂人日記)』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 아무래도, 조만간에 이 부분에 관하여 조금 더 고찰한 뒤에 글을 써야 할 듯 하다.

주석 및 참고문헌

  1. 사실 「루쉰(鲁迅)」은 필명이고 이 사람의 실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긴 하다.
  2. 나는 이 시각에 관한 교수님의 소개를 들으며 매우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3. 톨스토이는 러시아 귀족 계급 출신이었다.
  4. 톨스토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을 상기해두어야 할 듯 하다.
  5. 바깥이라는 단어와 여기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즉, 바깥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는 존재라는 뜻인데, 작품의 맥락을 고려할 때 ‘여기’란 사람의 내면이라고 볼 수 있어서, 교수님께서는 Le Horla란 바깥에도 있고 사람의 내면에도 있는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셨다.
  6. 교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그의 광인(狂人)에 대한 작품의 서사 중, 영지 구입을 포기하고 교회 앞의 걸인들에게 가진 돈을 전부 나눠주는 맥락이 발전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하고 부언하셨다.
  7. 내가 이해한 바대로 다른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서문에서 제시되는 정보인 ‘주인공이 관리, 즉 어느 지방의 후보가 되었다’는 것이 사실 관직에 나가서 오히려 자신이 광인(狂人)이던 시절에 깨달은 바를 통해 말 그대로 아이들을 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 가 된다.
  8. 생각해보건대, 공화정체적인 사상인 듯 하다.
  9. 옥, 즉 감옥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이를 옥리라 한다.
  10. 샤위의 따귀를 때린 옥리 아이를 가리킨다.
  11. “아이가 불쌍하다”고 샤위가 옥리 아이에게 말한 것을 가리킨다.
  12. 이 부분은 주권 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어쩌면 시대를 좀 앞선 인물인 샤위를 보고 미쳤다고 논평하는 것이다.
  13. 아마도 당시 루쉰은 조금 성장해서, 급진적 계몽에 회의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4. 당시 대두였던 토마스 헉슬리 계열의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5. 당시 중국의 상황은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서양 열강의 침략 하에 청에서 중화민국으로의 전이 과도기에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떠올려야 한다.
  16. 『광인일기(狂人日記)』 소설 속, 나 자신이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친 대목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다.
  17. 환등기란, 예전에 작은 사진을 현상한 판인 슬라이드를 뒤에서 광을 비추어 어떤 화면에 빔 프로젝터와 같이 크게 비추도록 하는 기기이다.
  18. 교수님께서는 이 부분을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광인이 소리치는 것과 함께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19. 교수님 말씀으로는, 당시 교육부 장관에 매우 개혁적인 인물이 있었다고,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개혁적인 인물이 당시 정부의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고. 그리고 이 인물은 나중에 북경대학의 제1대 총장을 지내 북경대학 초기 수립 과정에서 개혁적인 교수들을 다수 포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부언하셨다.
  20. 부언해 두는데, 많은 이들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혁명’은 과격한 것이라고 종종 오해한다. 그러나 ‘혁명’은 급진적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반드시 피나 폭력이 동반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역사책을 보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