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총서 #5. 개인 대 전체, 니체 대 마르크스

연구총서 #5. 개인 대 전체, 니체 대 마르크스

2022-07-01 0 By 커피사유

연구총서 시리즈는 커피사유가 작성한 레포트 · 연구 기록 · 소논문 등 학술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공간으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분석을 여러 방면에서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이 글은 2022학년도 1학기, 필자가 수강한 서울대학교 박찬국 교수님의 〈서양철학의 고전〉 수업의 과제로 작성된 레포트임을 밝혀둡니다.


마르크스, 그리고 니체. 19세기 이후 현대 인문학의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 두 철학자의 사상은 비슷하면서도 그 강조점에서 대립한다. 특유의 서술 방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강하게 개진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 대중들에게 큰 오해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자본주의’나 ‘염세주의’와 같이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던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그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니체와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초점을 맞춘 대상이 달랐다. ‘전체’와 ‘개인’이라는 구도 속에서 마르크스는 ‘전체’에 초점을 맞췄지만, 니체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체 대 개인’이라는 구도 하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전체’에 초점을 맞추는 사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자본주의의 필연적 몰락〉에 대한 주장은 그가 ‘전체’를 중심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유물론〉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진무한 개념을 계승하면서도, 역사의 전개 과정을 ‘신’ 또는 ‘절대정신’이 자신을 전개하는 과정이 아닌 인류의 생산력 발달 과정으로 이해한다. “역사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와의 모순 속에서 발전한다”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그의 〈역사적 유물론〉은 한 개인의 욕구나 심리보다는 ‘인류’라는 특정 집단의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한다. 〈자본주의의 필연적 몰락〉에 대한 주장과 자본주의하에서의 〈소외〉 현상에 대한 비판도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최소한의 생존도 보장해 주지 못하며, 발달 과정에 따라 사람들을 소수의 자본가 계급과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나누기 때문에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노동 · 노동 생산물 등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낯선 힘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앞서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동작 구조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자본은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을 통하여 자체 증식함을 밝혔으며,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 간에 존재하는 경쟁에 주목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춘 뒤, 그 분석 내용을 ‘개인’에게 적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것이다.


니체 사상은 마르크스 사상과는 반대로 ‘전체’보다는 ‘개인’에 가까운 사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니체 사상이 문제 삼는 것은 사회 시스템이 아닌,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가치 판단과 행동이다. 쇼펜하우어의 ‘생존 의지’를 계승한 ‘힘에의 의지’에서 니체 철학이 출발한다는 점은 그의 사상이 ‘개인’에 대한 것임을 보여준다. 니체는 모든 사람이 가지는 동물적 욕구에 대한 고찰을 기반으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고양과 강화를 지향하는 의지’, 즉 ‘힘에의 의지’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힘에의 의지’를 기반으로 니체는 유럽 사회 전반을 휩쓴 염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능동적인 개인의 태도를 강조했다. 〈능동적 니힐리즘〉이라는 니체의 표현은 그 정점에 있다. 니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관이 붕괴했더라도 지속적인 가치 상실과 체념에 빠져 있지 말고, 새로운 가치와 사상을 탐색할 것을 종용한다. ‘군주도덕’과 ‘노예도덕’으로 대표되는 니체의 도덕관도 ‘전체’보다는 ‘개인’에 대한 논의이다. 니체는 지배 계급에 대한 원한에서 기원하였음에도 ‘신’이나 ‘정의의 실현’을 앞세워 자신을 기만하는 ‘노예도덕’보다 ‘힘에의 의지’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개인’을 지향하는 ‘군주도덕’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나폴레옹이나 카이사르와 같이 오늘날 통상적인 도덕관념으로는 용납되기 어려운 행위를 한 역사적 인물들을 니체는 ‘군주도덕’을 바탕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당당하고 긍지 있는 개인의 태도를 강조한다. 니체는 사회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는 인간 ‘개인’이 가지는 근본적인 욕구와 모습을 고찰한 뒤, 바람직한 ‘개인’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니체와 마르크스의 사상은 근현대 철학의 혁명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개인 대 전체’라는 구도 아래에서는 서로 대립한다. 마르크스는 ‘전체’에 초점을 맞추지만, 니체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다. 이 같은 대립 구도로서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것은 마르크스와 니체가 각각 가지는 한계까지도 잘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전체’에 대한 분석에 집중한 나머지 ‘개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자본주의의 몰락을 진술할 때 인간 개인의 본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긍정적으로 보았다. 반면 니체는 ‘개인’에 대한 분석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사상을 ‘전체’에 대해 적용할 때 오해하기 쉽도록 했다. ‘힘에의 의지’를 추구하는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에 대한 니체의 예찬을 파시즘이나 나치즘을 옹호하는 진술로 이해하는 오해는 니체가 ‘전체’와 ‘개인’ 사이의 상호작용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고 ‘개인’에 대한 분석 위주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니체 철학이 ‘전체’와 ‘개인’ 각각에 집중함에 따라 가지는 이 한계점들을 고찰할 때는 이들 철학이 등장한 공통 배경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모두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개진하였다. 19세기 이후 현대 인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철학자로 이들이 손꼽히는 진정한 이유는 ‘전체 대 개인’이라는 이들 사상의 대립 구도는 물론이고 니체와 마르크스 사상의 공통점까지도 함께 고려할 때만 정확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