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총서 #2. 버클리의 ‘관념론’, 그리고 존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의 난점

연구총서 #2. 버클리의 ‘관념론’, 그리고 존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의 난점

2021-12-31 0 By 커피사유

연구총서 시리즈는 커피사유가 작성한 레포트 · 연구 기록 · 소논문 등 학술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공간으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분석을 여러 방면에서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이 글은 2021학년도 2학기, 필자가 수강한 서울대학교 이정환 교수님의 서양철학의 이해 수업의 기말 과제로 작성된 레포트임을 밝혀둡니다.


I. 서론

“인간은 어떻게 앎을 얻는가?”, 그리고 “인간의 앎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서양 철학사에서 길고도 풍부한 한 줄기를 이루어 왔다. 흔히 ‘인식론’이라 불리는 이 기나긴 논의의 역사에는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데이비드 흄(David Hume) 등의 철학자들이 대표 주자로 자리한다. 하지만 인식론의 주요 물음 중 하나인 “인간이 지각하는 것과 실제 존재하는 것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의 물음에 대한 논의의 관점에서 인식론의 역사를 조망하면 존 로크(John Locke)와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야말로 이 논의에서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앎은 경험으로부터 기원한다는 경험론적 입장, 그리고 지각의 유일한 대상은 지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이라는 시각만큼은 공유했던 이들은 감각 관념의 원천을 무엇으로 손꼽느냐에서 그 의견을 극명하게 대립시켰다. ‘표상적 실재론’을 주장한 로크는 외부 물질세계가 우리의 감각 관념의 원천이라고 주장했지만, ‘관념론’을 주장한 버클리는 외부 물질세계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감각 관념의 원천은 다른 마음, 즉 ‘정신’이라고 주장했다.1

버클리는 통념적으로 비추어보았을 때 분명히 지각하고 실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물질세계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대중이나 철학자들에게 버클리의 견해는 일반 상식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고 버클리의 견해에 대한 기존의 비판은 바로 이 점에 집중되어왔다.2 하지만 버클리의 논변을 단지 물질세계를 거부하는 것만으로 보고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버클리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난점 하나만을 비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버클리의 견해에 대한 보다 생산적인 고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의 견해를 다양한 논점과 측면에서 숙고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난점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버클리에 대한 기존 비판이 집중해온 ‘물질세계의 실재성’의 측면과는 다른 세 가지 측면에서 버클리의 견해에 대한 난점을 조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버클리의 ‘관념론’을 존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과의 대립 관계 속에서 살펴보고, 두 견해가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지를 논한다. 다음으로는 버클리의 견해에 대한 3가지 난점들을 순차적으로 지적한다. 첫 번째로는 ‘감각 관념과 상상 관념의 명확한 구분’에 관한 난점을, 두 번째로는 버클리의 견해가 유아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가지는 난점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관념의 제공자인 ‘정신’의 항상성 때문에 발생하는 난점을 순차적으로 지적한다.

II. 인식론에 관한 존 로크와 조지 버클리의 입장

II-1. 존 로크(John Locke)의 표상적 실재론

종교개혁 이후 학문이 신의 영역에서 벗어남에 따라 철학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앎의 대상은 무엇인가?”와 같은 인식의 문제들을 차츰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론의 논의에서 중대한 사상을 제시한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영국의 철학자 · 정치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였다.3

로크는 인식론의 물음에 대해서는 흔히 ‘표상적 실재론’이라고 불리는 유물론적 경험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지각 · 비교 · 반성 등과 같은 지성 작용이 가능한 모든 대상은 궁극적으로는 인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기원한 ‘관념’이라고 보았으며, 경험 이전의 마음은 관념이 전혀 없는 상태로 백지장과 다름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로크는 인간은 감각 기관을 통하여 더는 나누어질 수 없는 단일하고 비복합적인 관념인 ‘단순 관념’을 얻으며, 이성이 둘 이상의 단순 관념들을 비교하고 연결 지으며 묶는 과정을 통하여 ‘복합 관념’들을 얻는다고 보기도 했다. 로크에게 관념이란 사물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침이자 소재이고 개념으로 여겨졌다.4

한편 로크는 단순 관념의 원천으로서 분명히 실재하는 외부 물질세계를 상정하였다. 그는 ‘자연과학이 보여주는 세계’가 바로 실존하는 세계라고 보았으며,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인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나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등이 주창했던 견해인 ‘미립자설’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세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인 미립자들로 구성된 것이라고 보는 결정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같은 결정론적인 세계 속에서 사물은 그 미립자들의 구성에 따라 여러 ‘성질’들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로크는 사물이 가지는 성질은 상황에 따라서 다른 감각 경험을 산출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물체의 성질을 미립자에 의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결코 사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제1성질’과 물체에 속하지는 않으나 인간의 감각 기관과 상호작용을 통해 여러 감각 작용을 일으키는 성질인 ‘제2성질’로 나누었다. 사물의 성질에 대한 이러한 로크의 분류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지되지 않는 사물의 성질과 다르게 인지되는 성질 각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5 예컨대 사과의 색상은 서로 다른 색상의 조명 아래에서 다르게 인지될 수 있지만, 사과의 크기는 동일하게 인지된다는 점을 로크는 사물에 대한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분으로서 설명해낸다.

II-2.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의 관념론과 표상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가 인간이 지식을 얻는 원리를 바라본 시각은 경험론적 입장을 채택한다는 점에서는 로크의 견해와 공통적이지만, 그와는 달리 외부 물질세계는 부정하였다는 점은 극명히 대비된다. 버클리가 주장한 ‘관념론’은 주로 로크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전개되었다.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에 따르면 세계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관념들의 세계와 그 관념들의 원인이 되는 실제 사물의 세계 둘로 이분화되며, 또한 이들 표상과 실제 사물의 비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데, 버클리는 이 같은 이분화된 세계에 대한 견해는 불합리하다고 보았다.6

로크는 감각 기관을 통한 단순 관념들은 마음과는 독립된 외부 물질세계로부터 근원한다고 본 반면, 버클리는 이들 다순 관념들은 마음속 이외의 다른 장소에서는 실재할 수 없다고 보았고 따라서 외부 물질세계의 실존을 주장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즉, 버클리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것’은 곧 ‘지각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지각의 대상은 마음 안에 있어야 하지 마음 바깥에 있는 물질 안에 있을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버클리는 지각 대상인 관념은 오직 마음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7

버클리는 자신의 관념론을 옹호하기 위하여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첫 번째 비판은 로크의 견해를 받아들여 외부 세계의 물질 개념을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미립자의 기계적인 운동으로부터 어떻게 인간의 두뇌 안에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관념의 생성이라는 작용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비판에서는 미립자의 상호작용은 물질적인 것이지만, 마음 속의 관념은 정신적인 것임에 집중한다. 버클리는 당시 17세기에 널리 지지받던 심신이원론에 의하면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논하며,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은 결코 동일할 수 없는 물질과 정신을 동등한 것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8

버클리의 두 번째 비판은 물질은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로크는 미립자들의 우연한 충돌 이후 일련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연쇄작용으로써 인과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인 기계적 인과론을 그의 표상적 실재론에서 채택하고 있는데, 버클리는 진정한 원인은 어떤 것이 일어나고 발생하도록 하는 힘이기 때문에 기계적 인과 관계는 부당한 인과 관계라고 주장했다. 버클리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진정한 원인은 물질세계에 있을 수는 없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관념과 물질이 기계론적인 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로크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였다.9 버클리는 관념의 원인은 물질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마음, 즉 ‘정신(Spirit)’이라고 주장했다. 물질적 실체의 개념을 상정하기를 거부하는 버클리의 입장에서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른 관념 또는 다른 마음뿐인데, 관념은 수동적이고 다른 마음은 능동적이므로 버클리는 어떤 것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행위인 능동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다른 마음만이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버클리는 이와 같은 관념의 원인이 되는 다른 마음, 정신적 실체란 곧 신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10

III. 버클리의 ‘관념론’과 ‘표상적 실재론’ 비판에 대한 난점

III-1. 감각 관념과 상상 관념의 명확한 구분에 관한 난점

버클리는 관념론에서 논증 전개의 많은 부분을 감각 관념과 상상 관념의 명확한 구분에 의존하고 있다. 버클리는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감각 관념과 인간의 의지에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상상 관념의 구분은 그 특성이 명확한 정도를 기준으로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이와 동시에 관념은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며 정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11

그런데 일상 속 경험을 성찰해보면 어릴 때는 실존한다고 믿었던 어떤 관념에 대한 실존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부정되는 사례가 쉽게 관찰된다. 산타의 실존성에 관한 아동의 믿음이 대표적이다. 3 ~ 6세 정도의 아동은 대체로 산타는 실존한다고 믿으며 크리스마스에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은 부모가 아닌 산타가 자신에게 준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동들은 산타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며 하나의 구전 문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다.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산타의 실존에 관해 묻는다면 산타는 실존한다고 대답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이 같은 일상 속에서 쉽게 관찰될 수 있는 대상 개념에 대한 실존성의 변화는 관념이 정적으로 주어진다고 보는 버클리의 견해와 합치되지도 않으며, 동시에 정적인 감각 관념과 상상 관념은 항상 그 관념이 가진 특성에 따라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는 버클리의 논증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버클리의 논증이 타당하다면 실존하지 않는 산타에 대한 관념이란 실제로는 상상 관념에 불과하므로 명백히 아동들에게도 그 특성에 따라 상상 관념으로 지각되어야 하지만, 아동들에게는 산타에 대한 관념이 실제 존재하는 관념으로 지각되는 것이 일상 속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III-2. 유아론으로의 귀결에 따른 난점

버클리의 관념론에 따르면 우리에게 앎을 제공하는 것은 지각의 유일한 대상인 관념의 원천을 제공하는 자인 정신적 실체, 즉 ‘신’이지 외부 세계가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앎에 대한 이론은 인간 사고와 지각의 과정이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구도보다는 마치 ‘신’과 인간 사이의 대화 또는 의사소통의 구도로 비추어지게끔 한다. 이 같은 시각에서는 버클리의 관념론은 ‘신’이 인간에게 여러 관념들을 제공하고,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지며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관념들을 조합하고 변형하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고 앎을 얻는 과정으로써 인식론에 대한 견해를 전개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도는 궁극적으로는 세계에 관하여 실존하는 것으로 나 자신과 나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관념, 그리고 그 관념의 원천이 되는 다른 정신적 실체만을 확신할 수 있게 한다. 버클리의 관념론은 자신과 관련된 이 같은 존재들 이외의 다른 존재들에 대한 관념들은 모두 의심 가능한 대상으로 여겨지게 한다. 따라서 버클리의 이론은 결국 타인의 실존성에 대한 물음을 유아론으로 귀결시키게 되므로 실용적이지 못하다. 예컨대 신이 주는 ‘다른 사람’의 관념은 버클리가 주장하는 관념론에 따르면 그 실재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일어나도록 하는 관념이 자의적이며 거짓된 관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클리의 견해에 따르면 유일하게 어떤 다른 사람에 대한 관념이 지각자의 안에 존재할 때 그 실재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다른 사람’이라는 관념의 원인이 되는 ‘신’이라는 다른 정신적 실체이지, ‘다른 사람’의 실재성은 결코 알 수 없다.

위와 같은 논의에 대하여 ‘신’은 성실하고 기만적이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오직 실존하는것의 관념을 준다고 말하는 것은 신과는 독립적인 ‘실존의 영역’을 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버클리가 둔 “관념의 원천은 오직 다른 정신적 실체뿐이다”라는 가정에 모순된다. 신과는 독립적인 이 ‘실존의 영역’의 정체는 버클리의 가정에 의하면 우선 실존한다고 확증할 수 없는 물질세계일 수도 없으며 동시에 정신적 실체라고도 할 수 없다. 정신적 실체라면 그 영역 자체는 관념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이 실존 영역이 관념들의 집합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남은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데, 이 경우 신은 오직 실존하는 관념들을 골라 인간에게 계시하는 중개자와 다름없는 입지에 위치하게 되고 신은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된다.

III-3. 관념 제공자인 ‘정신’의 항상성에 대한 난점

버클리는 그의 관념론에서 인간 지각의 유일한 대상인 관념에 대한 원인은 마음 바깥의 어떤 정신적 실체라고 주장했으며, 나아가 궁극적으로 이 정신적 실체란 ‘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관념이 어떤 하나의 외부 물질세계가 아닌 ‘신’이라는 정신적 존재에 의하여 주어진다는 것은 ‘신’과 같은 정신적 실체란 능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주어지는 관념에 대한 항상성을 의심할 수 있게 한다. 즉, ‘신’이라는 관념의 정신적 실체로서의 원천이 둘 이상의 지각자에게 동일한 형태의 관념을 항상 제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버클리의 견해 안에서는 성립되지 못한다. 신에 대한 통상적인 개념에 따르면 ‘신’은 자의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므로, 신은 임의로 동일한 물체 O에 대하여 사람 A에게는 P라는 관념을 일으키고, 사람 B에게는 Q라는 관념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버클리의 관념론은 충분히 소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에 관한 인간의 앎이나 지식이 올바른 것인지에 관한 회의에 빠지도록 하는 문제점을 가진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하여 ‘신’의 관대성을 근거로 항상 동일한 물체를 지각하는 두 사람에게는 같은 관념이 주어진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신’에 대한 관대성이라는 상식에 호소하는 것으로, 신의 관대성이 귀납적으로 또는 연역적으로 도출된 것임을 보이지 않고서 단지 보편적인 대중의 믿음에 의존하는 반론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대중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통념이나 믿음은 항상 참이라는 보장이 없으며, 항상 거짓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정신’의 항상성에 대한 난점을 지적하는 본 논증에 대한 제대로 된 반론은 명제 “신은 관대함이라는 속성을 가진다.”가 분석적으로 참인 명제라는 사실을 밝히거나 참인 부넉적 명제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을, 또는 현재까지 드러난 모든 사실들을 토대로 귀납 추론을 적용해보면 이 같은 명젝가 참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IV. 결론

지금까지 버클리의 ‘관념론’, 그리고 그가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에 대하여 제기한 비판점들과 관련하여 제기될 수 있는 세 가지 난점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를 위하여 본고에서는 로크와 버클리의 인식론적 견해는 감각 경험으로부터 앎이 근원한다는 경험론적 견해를 공유하면서도 감각 관념의 원천으로 외부 세계를 상정하는지, 아니면 다른 정신적 실체를 상정하는지를 놓고 대비된다는 사실 또한 살펴보았다. 로크와 버클리는 동일하게 인간 지각의 유일한 대상은 마음속에 형성된 ‘관념’이라고 보았지만, 로크는 외부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미립자들에 의한 성질들이 가진 힘이 인간에게 관념을 산출한다고 봄으로써 세계를 관념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로 이분화한 반면, 버클리는 이에 반대하여 ‘존재하는 것은 곧 지각되는 것’이라는 신조 아래 관념은 외부 물질세계로부터 기원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다른 마음, 즉 정신적 실체로부터 기원한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이 정신적 실체야말로 바로 신이라고 주장하였음을 확인했다.

서론에서 이야기되었듯, 버클리의 관념론은 일반 상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로 버클리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그가 외부 물질세계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버클리의 관념론, 그리고 그가 로크의 입장에 관하여 비판한 바를 고찰할 때 그가 감각 관념과 상상 관념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고 주장한 점은 실제 관찰과 모순된다는 점, 그의 이론은 궁극적으로 유아론으로 귀결된다는 점, 관념의 제공자인 정신적 실체의 항상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과 같이 버클리의 관념론에 대한 새로운 난점들이 제기될 수 있음을 보였다. 버클리에 대한 이 같은 새로운 난점들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 시각에서는 로크의 반대론자 정도의 흐름에 있는 버클리의 주장은 다시 한 번 여러 측면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로크가 버클리에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으며, 버클리의 인식론은 궁극적으로 로크의 인식론을 염두에 두고 전개되었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존의 버클리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로크의 그림자에 너무 가려져 버클리의 논변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측면과 논점들을 발견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버클리의 견해에 대한 보다 폭넓고 깊은 연구의 필요성은 아주 절실하다. 비록 본고에서는 버클리의 견해가 가지는 3개의 난점만을 간략하게 제시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버클리의 인식론과 로크에 대한 비판이 가진 잠재적인 논의의 양과 질, 그리고 버클리에 대한 기존의 이해 부족을 고려하면 버클리의 인식론, 즉 관념론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버클리의 견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그리고 그의 견해에 대한 난점들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참고 문헌

  • 조원, 〈조지 버클리: 물질의 부인〉, 《철학논구》 27, 서울대학교 철학과, 1999, 279-300면.
  • 이경민, 〈존 로크의 인식론 논의: 소유권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주석 및 참고문헌

  1. 조원, 〈조지 버클리: 물질의 부인〉, 《철학논구》 27, 서울대학교 철학과, 1999, 279면.
  2. Ibid., 279-280면.
  3. 이경민, 〈존 로크의 인식론 논의: 소유권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9-11면.
  4. Ibid., 18-20면.
  5. Ibid., 21-22면.
  6. 조원, op. cit., 282-286면.
  7. Ibid., 286-290면.
  8. Ibid., 290-291면.
  9. Loc. cit.
  10. Ibid., 292면.
  11. Ibid., 293-2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