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시간 #3. Hopes And Dreams – Toby Fox

음악이 흐르는 시간 #3. Hopes And Dreams – Toby Fox

2020-12-28 0 By 커피사유

커피, 사유(思惟)의 음악이 흐르는 시간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선곡한 일상 속 음악들과, 그에 엮인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입니다.

아(我)와 일상, 그리고 음악. 음악이 흐르는 시간, 카페지기 커피사유입니다.

어느덧 2020년의 종지부가 다가오고 있는 요즘, 이제 세 번째 음악이 흐르는 시간 시리즈 포스팅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한 해가 끝나가는 만큼, 저물어가는 2020년과 2021년 새해를 맞이하는데 딱 맞는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속에서 일더군요.

2020년 한 해를 다들 어떻게 보내셨을까요? 우리 대부분은 코로나 19라는 전세계적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경험하면서, 혼자 있기 좋든, 싫든지 대부분을 자택에서 보내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세상에, 트위터 공식 계정이 각 기업들의 공식 트위터 계정들에게 2020년을 한 단어로 요약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때, 가장 최고의 대답으로 뽑힌 Adobe사의 대답이 ‘Ctrl+Z’였을 정도이니 올해는 말 다 했죠.

대부분은 코로나 19와 엮여 있는 기억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2020년 동안 우리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회상하고, 또 늘 그렇게 해 왔듯 새해 전야가 되면 행복한 다음 한 해 – 2021년을 기약하고 희망할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릴 세 번째 음악이 바로 이러한 우리의 ‘기억과 희망’, 또는 ‘기억과 소망’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 번째 음악이 흐르는 시간, 오늘 이 시간에는 유명한 인디 게임이죠. Undertale에 등장하는 OST인, Toby Fox가 작곡한 Hopes And Dreams라는 곡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인간과 절망, 그리고 희망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진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과 바다’ 中,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떤 순간이면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절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라고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과 자신의 맞지 않음, 혹은 모순이라고도 부르는 어떤 것들에 부딪히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옳을까라는 회의에 종종 빠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기쁨이 찾아오더라도 새로운 난관에 우리는 봉착하게 되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클리셰처럼 기승화되어 일상처럼 익숙해져 버린 것, 그게 오늘날의 우리들이죠.

이러한 ‘절망을 떼어놓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비극적 소재에 주목한 것은 비단 우리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구전되어 내려온 유명한 그리스-로마 신화 중에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그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대략적으로 요약하자면 신이 인간들을 향한 벌로 하사한 ‘상자’를 결코 열어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무시하고,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자, 그 상자 속에서 기근, 재앙, 공포 등 각종 부정적인 것들이 상자에서 빠져나와 세상으로 날아갔다 – 라는 내용의 이야기이죠.

흔히 ‘인간의 호기심’의 한계, 혹은 그 대가 등에 관한 해석이 주로 언급되는 이 ‘판도라’의 상자는 한 가지 구전되는 바에 의하면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주목할 만 한 듯 합니다. 그것은 바로 판도라가 그 부정적인 것들이 빠르게 상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급히 상자를 닫았을 때 그 상자 안에는 한 개의 어떤 것이 남아있었다는 기술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것은 ‘희망’이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인간들은 그 이후로 ‘상자’ 속에 들어있는 어딘가의 ‘희망’이라는 것을 찾아서 부정적인 고통과 격정 속에서도 헤맨다고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라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오늘날 주목해야 할 점은 ‘부정적인 요소’로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모색하는 인간의 태도는 비단 오늘날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앞서 언급드렸듯,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끔찍하고도 수많은 인명을 앗은 전세계적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연구, 정보 교환, 교통 차단 등, ‘우리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라는 일종의 희망을 가지고 현재도 끊임없이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들어왔던 수많은 오래된 이야기들과 신화, 설화, 민화 등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영웅담,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세요. 인간은 ‘위기’ 앞에서도 ‘웃음’, 혹은 우리가 ‘희망’이라고 칭하는 ‘낙관적인 자세’, 혹은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종족인 듯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인간이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종족이라면, 분명히 ‘인간’인 우리 스스로가 ‘절망’ 앞에서 ‘희망’을 노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 우리가 흔히 슬럼프나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살려달라고 구원의 몸부림을 칠 때 우리가 흔히 속단해버리는 어떤 것. 바로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스스로가 ‘더는 안돼, 나는 여기에서 끝이야.’ 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 인류 전체가 (아마도) 전 지구적인 전염병 위기를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협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협력의 순간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고대로부터 이어져오고,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는 ‘희망을 결코 잃지 않는 인간의 자세’에 대해서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스스로의 속단에 갇혀 있지만 말고,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다시 한 번 꿈꾸고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도 계속 품고 간직하려는 ‘희망’이라는 어떤 추상에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Undertale에서는 그러한 ‘희망’이라는 추상을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Determination’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 듯 합니다. 의역하면 보통은 ‘의지’, ‘결정권’으로 논의되는 이 단어는, 주인공 Frisk가 (물론 불살 루트의 경우) 자신의 목숨이 강력하게 위협받는 최후의 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스스로의 마음이자, 가슴이자, 또한 본인 스스로입니다. 상대가 치명적인 공격을 아무리 계속 감행해오더라도, 쓰러져도 Frisk는 일어나고, 다시 일어나며, 계속 상대의 이름을 부르죠. 다시 나아질 수 있다는,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암묵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어떤 곳을 향하여, 그 목소리는 계속, 또 계속 나아갑니다.

그래요, 그 목소리가 결국, 우리를 상징하는 겁니다.

보충: Hopes And Dreams의 경우도 Youtube에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말고도 괜찮은 어레인지 버전들이 많더군요. 크게 3가지 정도를 선별해볼 수 있겠는데, 첫째는 오리지널 Undertale 사운드 트랙이고, 둘째는 어쿠스틱 기타 버전, 셋째는 오케스트라 버전입니다. 세 버전을 모두 다 올려보지만, 아무래도 제 개인적인 Pick은 두 번째, 어쿠스틱 기타 버전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네요. 부디 천천히 즐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