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16. 몰리에르, 인간 혐오자

잠시, 멈춤 #16. 몰리에르, 인간 혐오자

2021-04-25 0 By 커피사유

잠시, 멈춤 시리즈는 필자가 읽은 글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일부, 혹은 전부 인용하고, 필요에 따라 주석을 곁들이는 등, 커피, 사유의 글 모음집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로 포스팅되는 모든 글의 경우, 필자가 쓴 글이 아님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의 출처는 ‘본문’ 단락 밑 ‘출처’ 단락에 표시하였습니다.

본문

일러두기

이 포스트에서는 글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을 부분 발췌하여 인용하고 있음을 사전에 알립니다.

#1

자네가 어떤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극단적인 다정함과 친근함을 표시하며
환대와 맹세를 남발하고
유난스럽게 포옹하는 것을 보았어.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상대가 가자 그제야 그저 아무개라고 답하더군.
한참 열을 내던 게 언제냐는 듯
아주 무관심한 사람처럼 그를 소개하더군.
자기 양심을 속이면서 그렇게 비굴하게 구는 것만큼
부당하고 비열하고 파렴치한 일이 또 어디 있어.

#2

진실하고 명예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만 해야지.

#3

상대의 장단점도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거든.

#4

하지만 사교계에 있는 이상, 관행이 요구하는 대로
겉으로나마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 할 필요도 있어.

#5

난 자네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
우정을 위장한 부끄러운 교제는 과감하게 응징해야지.
나는 어떤 만남이든 인간 본성에 충실해서
우리의 속내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
누가 말하건 쓸데없는 찬사로
진짜 감정을 위장해서는 곤란해.

#6

하지만 솔직함을 완전히 드러내서
우스꽝스러워지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명예를 엄격하게 중시하는 자네에게는 유감이지만
속내를 숨기는 게 더 좋을 때도 있거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그대로 말해 주면
그게 적합하고 예의범절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어?
자네라면 어떤 사람이 싫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사자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느냐 말이야?

#7

난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을 증오해.
어떤 부류는 고약하고 악의적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부류는 고약한 아첨꾼들 앞에서
미덕을 가진 사람이라면 악행을 보고
당연히 가져야 하는 엄격한 증오심을 발휘하지 않기 때문이지.

… (중략) …

가면을 벗겨야 마땅한 저질 인간이
치사한 방식으로 출세해서
기세등등하게 잘난 체하는 걸 보면
인재들은 화가 나고 덕망 있는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되지.

#8

지금의 세태에 좀 신경을 덜 쓰고
인간 본성에 좀 관대해지게.
사람들의 결점을 너무 엄격하게 판단하지 말고
좀 유연하게 받아들이란 말이야.
세상을 살자면 타협하는 미덕도 필요해.
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욕을 먹을 수가 있거든.
정말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극단을 피하면서
소박한 분별력을 유지하고 있어.
지나간 시절의 경직된 미덕은
요즘의 관행과 너무 충돌한다는 생각이 들어.
시대적 관행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지나친 완벽함을 기대한단 말이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교정하겠다는 생각만큼
정신 나간 짓도 없다고 생각해.
나도 자네와 마찬가지로 세상사를 지켜보면서
다른 방식이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어.
그러나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자네처럼 화를 내지는 않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되도록이면 그들의 방식을 따라가지.
궁정이나 도시를 안 가리고 자네가 화를 내는 것만큼
내가 침착할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 성찰한 결과라네.

#9

그러면 자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네가 그렇게 철저하게 추구하는 공정성과
그렇게 집착하는 정직함을 완전하게 갖추었는지 말해 보게.

#10

하지만 사람들 간의 친교에는 좀 불가사의한 구석이 있어서
아무 데나 우정을 갖다 붙이면
분명 그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우정으로 맺어지려면 분별력과 선택이 필요하기에
친교를 맺기 전에 우린 서로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어떤 기질 때문에
친구가 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니까요.

#11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이 시대 다수의 고상한 사람들을 얼마나 망쳤는지 알려 줌으로써
그들이 절대 글을 쓰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요.

#12

형편없는 책이 출판되는 것을 내버려 두면
글재주도 없는 인간들이 생계 때문에 글을 쓰게 됩니다.

#13

웃기 잘하는 자네의 문학적 감각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찬탄해 마지않는 번쩍거리고 화려한 시보다
나는 우리 선조들의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한다네.

#14

그분들의 호감을 사는 것은 중요해요.
뭐랄까? 그분들은
궁정에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서
모든 대화에 참여하지요.
그분들은 우리를 돕지는 않아도 해를 끼칠 수 있거든요.
도움은 다른 데서 받을 수 있어도
그처럼 큰소리치는 분들과 사이가 나쁠 이유는 없지요.

#15

궁정을 출입하는 양반들, 좀 더 심하게 공격해 보시지요!
각자 나서서 누구도 예외로 두지 말란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비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저마다 서둘러 달려가 악수를 청하거나
환심을 사려고 입맞춤을 하면서
봉사를 다짐하는 사람들은 또 누구지요?

#16

아닙니다. 당신들의 상냥한 미소가
부인의 모든 독설을 유도했으니 그게 문제이지요.
당신들의 잘못된 아부가
부인의 풍자 기질을 계속 부추긴 겁니다.
잘한다고 신들이 박수치지 않았으면
부인은 그렇게 남을 조롱하는 데 재미를 느끼지 않았겠지요.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악덕이 만연하게 된 게
모두 아첨꾼들 탓이니 이들에게 잘못을 물어야지요.

#17

나는 사람들이 우울한 상념에 빠져들어야
분별력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모든 문제에 있어
분별없이 칭찬하거나 생각도 안 하고 비난하거든.

#18

누군가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에게 아첨을 삼가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느 것도 관대하게 용서하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비겁한 추종자들을 굴복시켜서
그들이 내 뜻에 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들의 무덤덤한 친절보다
차라리 나의 괴짜 스타일이 더 좋다고 생각하겠지요.

#19

열정 때문에 상대방이 흠잡을 데 없고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일 뿐이에요.
상대방의 결점에다 완벽함이라는 이름을 붙여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요.

… (중략) …

이처럼 사랑의 열정이 극단에 이르면
상대방의 결점까지 좋게 보이는 법입니다.

#20

도대체 우리보고 어떻게 타협하란 말이야?
귀족법원 판사들의 결정에 따라
논쟁을 불러일으킨 시를 좋다고 평가하라고?
지금도 그자의 시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한 말을 취소할 생각이 전혀 없어.

#21

그녀들이 영광스럽게도 나의 마음을 사려고
아무런 수고도 안 했다면 그거야말로 부당한 일이지.
양측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접근이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해.

#22

타인을 비난하려고 마음먹기 전에
자신을 오랫동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을 교정하고 싶다면
자신이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23

부인, 요즘에는 모든 사람이 칭찬을 받아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재능의 유무를 구별하지 않거든요.
누구나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기가 칭찬받았다고 해서 그게 영광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심지어 제 하인까지 신문에 날 정도로
누구에게나 칭찬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24

처음부터 당신이 내 사랑을 거절하셨다면
단지 운명만을 탓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짓된 고백으로 사랑을 부추기고
이렇게 배반했으니 어떤 처벌을 받아도 부족한
비열한 행동을 저지른 것입니다.

#25

빌어먹을! 사람들은 늘 이런 식이란 말이야.
허영심에 이끌려서 행동하거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솔직함과 고결한 미덕,
정의감과 명예심 등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26

그게 아니야. 난 자네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
세상의 모든 일이 결탁과 이해관계에 얽혀 있으니까.
하지만 계략이 통하는 사회가 오늘만의 현실은 아니야.
이제는 사람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그들의 사회를 떠나는 이유가 성립이 될까?
인간들에게 여러 가지 결점이 있기에
우리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이거든.
만약 모든 사람이 성실하고 솔직하고
정의롭고 고분고분하다면
대부분의 미덕은 소용이 없어.
왜냐하면 미덕이란 우리가 정당한 가운데서
타인의 불의를 담담하게 견뎌 낼 때 발휘되거든.
그래서 남다른 미덕을 가진 사람은….

#27

(앨리앙트와 필랭트에게)
여러분은 가치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셨고
나의 취약한 구석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서 이게 전부는 아니고
나의 약점을 끝까지 끌고 가는 걸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항상 약점이 있는 법인데
그들을 현명하다고 부르는 게 얼마나 잘못인지 보여 드리지요.
(셀리멘에게)
당신은 나를 배반했지만 난 당신의 잘못을 잊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당신의 모든 행동을 용서하고
당신이 아직 젊기에 저지른 오늘날의 비행을
인간적 나약함의 결과라고 덮어 두겠습니다.

출처

Moilere. (2019). 인간 혐오자 (Le Misanthrope) (이경의 역). 지만지드라마.

주석

전체에 대한 주석

이 글은 서울대학교 고전 100선 읽기 수업에 참여하여 읽게 된 두 번째 글인 몰리에르의 <인간 혐오자>라는 희곡을 번역한 판을 읽고 몇몇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을 내가 발췌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상의 발췌한 부분들은 내가 특히나 주목하고 싶었던 부분들이지만, 이들 주목하고픈 부분들에 대한 주석을 하나하나 달기 전에 우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전반적인 느낌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이 책에는 알세스트라는 사람이 주인공의 위치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지금까지 희곡 내에 제시된 각종 언사로 유추하여 볼 때, 위선을 증오하는 사람이며 그 때문에 위선이 너무나 가득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에 피로감을 느끼고, 나아가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다소 매사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있으며, 이른바 ‘우울한 개인’으로 지칭하면 적절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평소에 이 알세스트 – 라는 사람의 시각과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도 한 인물이라고 스스로를 평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아무래도 이 글을 그의 관점에 서서 중심적으로 해석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시각이 그의 시각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나 자신이 썼던 사유 #14. 규약으로써의 예의에서 시사하는 바가 그가 말하는 다음의 바, 앞선 5번 발췌와 동형적인 관계에 있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자네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
우정을 위장한 부끄러운 교제는 과감하게 응징해야지.
나는 어떤 만남이든 인간 본성에 충실해서
우리의 속내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
누가 말하건 쓸데없는 찬사로
진짜 감정을 위장해서는 곤란해.

둘 사이의 동형적인 관계란 우리가 ‘타인 앞에 솔직하지 못함’이라는 현실을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의 축약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13에 대한 주석

그, 즉 알세스트가 선조들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생각하건대, 아마도 그 선조들의 작품은 쓸데없는 문학적 수사나 기타 등등의 미사여구로 오염되지 않고 솔직하고 가장 진실된 표현으로 이루어진 ‘솔직함의 문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은 솔직하게 써야 하고, 되도록 둘러 쓰지 않는 나의 ‘글쓰기의 이상’과 동형적 선상에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한편으로 가끔은 조금 문장을 꾸며 주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해서…….

과연 솔직함의 문학이 항상 옳은 것이며, 제1순위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알세스트는 ‘솔직하지 않음’이라는 인간의 위선적 속성에 대하여 실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솔직하지 못한 인간과 그 산물을 혐오하는 것이다.

발췌하지 않은 어느 부분에 대한 주석

지나치게 솔직하면 이렇게 유감스런 일이 생기는 법이야.

지나치게 솔직하면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바로 주고, 그렇다고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자니 이는 진리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며, 나중에 상대에게 잠재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의 요소를 방치하는 방관의 행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타인에게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고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의상 거짓을 말해서 타인의 기분에 맞추어주어야 하는가?

#14에 대한 주석

… 생각해보건대, 이 질문은 아무래도, ‘<벽>에 해당하는 권력자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위선으로라도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그들 앞에서 위선을 행해야 하는 것이 맞는가?’ 라는 질문으로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등장인물 중 <셀리멘>에 대한 주석

셀리멘은 작품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알세스트의 연인으로 처음 스스로를 내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 말미에서 셀리멘은 알세스트를 가지고 장난을 쳤으며, 다른 남자들과 연애를 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셀리멘은 이처럼 똑같이 위선적인 인물인데, 이상하게도 중간에 타인에 대한 험담을 하며, 마치 자신은 고상한 인물이라 이런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발화를 행하는 그녀도 똑같이 위선적인 인물인데, 타인에게 위선을 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모습 자체는 역설적이다. 아, 그리고 나아가 <위선>을 옹호하는 입장에 반대되는 몇 가지 부언을 덧붙이자면, 모두가 타인의 약점을 알면서, 예의라는 명목으로 타인 본인 앞에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데, 역으로 본인이 아닌 누군가 앞에서는 줄곧 타인의 약점을 말하곤 한다. (적어도 본인 앞에서보다는 약점 지적의 발언이 자유롭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예의라는 것을 위해서…. 솔직하지 못해도 된다는 논증 자체의 근거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18에 대한 주석

… 그는 사랑 자체에도 거짓이 개입할 여지를, 위선이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 순수한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랑은 어떠한가? (내가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행한 바는 없지만 적어도 간접적으로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사랑을 속삭이는 각종 말들에는 수없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위선과 거짓의 축적이, 결국 두 사람을 파국으로 이끌고 만다.

#20에 대한 주석

… 아마 그에게는, 사회에 의해 강제된 위선, 거짓을 행하라는 요구로 귀족 법원의 출두 명령이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21에 대한 주석

… 양측의 지위, 능력이 동일할 때, 관계의 형성은 양방이 동일하게 노력해야만 하는 의무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가?

#22에 대한 주석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모두가 위선적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삶을 사는 인물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