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7. 리더만을 바라는 ‘더러운’ 세상!

잠시, 멈춤 #7. 리더만을 바라는 ‘더러운’ 세상!

2020-10-17 0 By 커피사유

‘잠시, 멈춤’ 시리즈는 필자가 읽은 글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일부, 혹은 전부 인용하는 등, 이 카페에 모아 두는 포스트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로 포스팅되는 모든 글의 경우, 필자가 쓴 글이 아님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포스팅에 사용되는 모든 글의 출처는 포스트의 맨 하단에 표시합니다.

2학년 1학기의 모든 시험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점수가 나오기 시작해 모두가 우울감에 빠져있던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수빈아, 이 세상은 너무 리더만을 바라는 것 같아. 근데 리더, 리더 하지만 사실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 그러니까 일반 사람이 있어야 리더가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속 엄석대도 사실 리더만을 바라는 어른들에 의해 생겨난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특히, 경남 각지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경남과학고등학교의 학생들이라면 더 그래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방법, 남을 이끌어갈 방법에 대해 수없이 배우며 생각해왔고, 또 이를 바탕으로 주변 사람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가지게 된 그 ‘권력’을 이용할 딴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고, 그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부담감을 가지다 잘 되지 않아 좌절을 맛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엄석대는 그러한 면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인물 중 하나이다. 엄석대는 호적이 잘못되어 나이가 두세 살 많은 탓에 몸집도 큰데다가 아이들을 이끄는 능력까지 있다 보니 저절로 리더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엄석대는 최고의 리더였다. 아이들이 딴 길로 새지 않게 하면서 반을 최고의 반으로 만드는 엄석대는 선생님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아이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권력을 쥐여주었다. 사실상 선생님의 권력과 맞먹는 엄석대의 권력은 엄석대를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점점 리더가 아닌 독재자가 되어갔고, 결국은 6학년 선생님에 의해 끌어 내려지게 된다.

리더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직이나 단체 따위에서 전체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나는 이러한 리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 아래 아무 압력 없이 지내면서도 사람들이 따르는 사람이 생길 때, 비로소 그 사람을 ‘리더’라 칭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리더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저 잘 이끄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칭호 같은 것이다.

제목에서 다소 과격하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너무나 리더를 원한다. 지나치게 원해서, 리더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면이 있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의지를 받는 리더가 훌륭한 리더가 되느냐 독재자가 되느냐는 정말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역사에서도,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알 수 있다. 지금은 리더가 되는 법 뿐만 아니라, 올바른 ‘구성원’ (물론 그 구성원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아이들처럼 침묵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할 때인 것 같다. 리더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리더는 더 이상 리더가 아니다.

‘리더만을 바라는 [더러운] 세상! – [우리들이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조수빈. 고전의 숲 과학의 길. 경남과학고등학교(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