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살해와 살아있음

2022-03-31 Off By 커피사유

#1.

나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과의 투쟁은 결국은 나 자신과의 투쟁으로 환원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자신 대 나 자신의 투쟁으로 환원된다. 이 투쟁으로의 환원은 그 모든 것과의 투쟁은 다름아닌 나 자신의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이보다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게 해 준다.


#2.

나 자신과의 투쟁은 결국은 어떤 종류의 살해인 셈이다 ― 나 자신을 나 자신이 성공적으로 살해하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가 나 자신의 살아있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죽어있는 것이다. 애초에 모든 시체는 스스로를 살해할 수 없다. 오직 살아있는 것만이 스스로를 살해할 수 있다.


#3.

살아있는 것은 죽어있는 것의 반대로서 정의된다. 그러므로 모든 시체가 아닌 살해자는 마땅히 살아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자신에 대한 살해자는 스스로를 찌른 그 칼을 높이 들고서 이 칼에 묻은 피야말로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소리 높여 칭송할 것이다 ― 어제의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비겁한 이들은 모두 시체에, 비겁한 시체에 불과할 뿐이니까 ― 나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을 죽여버림으로써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탁월한 정의인가. 살아있는 것이 죽어있는 것의 반대로서 정의된다는 사실은 죽음으로부터 반대로 살아있는 것이 기원한다는 바로 지금의 논의와 동형적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