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철학과 ‘철학함’

2024-07-06 0 By 커피사유

“Gott ist tot.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어록이 하나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바로 그 말. 니체 초심자들에게는 마치 ‘신의 존재 부정’으로 들리기에 신성모독 혹은 지극한 현대주의적 발언으로 여겨지곤 하는 말. 그러나 그 뜻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사실 니체의 전반 사상에 대한 폭 넓은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서양 철학의 전반적인 역사 혹은 그 기조에 대한 시야가 어느 정도 잡혀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고대 그리스로부터 뿌리가 뻗어나오는 서양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니체 철학이 좋은 시작점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술하였듯 니체의 말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니체 철학이 서양 철학사에서의 근대 즉 후기의 철학에 해당하는 이상 니체 이전의 서양 철학자들이 역사적으로 인간 삶의 무엇에 집중해왔으며 어떤 논제들로 어떻게 토론해왔는지를, 즉 서양 철학의 계보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학을 계보적 ·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지루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처럼 들리는 경우도 있고, 또 정작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이론을 설파하는 듯한 불편함마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철학함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철학 교육에서 널리 이용되어온 계보적 접근 그리고 그에 수반된 암기적 교육법 때문에 철학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대중적 시각이 퍼졌다는 견해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모임의 구성원 대다수가 대학의 서양 철학 교양 강의를 들은 경험은 물론이고 관련된 서적에 노출된 경험도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도서를 선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니체 철학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파괴력이 서양 철학의 계보를 살펴보는 전통적 접근법보다 철학 입문자들의 흥미를 이끌어가기에 적합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니체 철학이 가진 특유의 파괴력과는 별개로, 철학 자체가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철학함이 왜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복잡한 역사와 담론들을 왜 우리가 굳이 따라가야 하는지,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한 소위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을 왜 우리가 익혀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성역 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일상적인 것들을 다시 한 번 낯설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바쁜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막연한 개념으로만 자리잡아 생각할 기회조차 별로 없는 대상들에 대해, 철학은 대담하게도 가장 근본적이고 도발적인 질문들을 제기해온 것입니다.

개인적인 흥미로 제가 니체 철학을 읽으며 논한지 이제 약 2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난해하기로 유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해해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지만, 니체의 저작들을 하나둘씩 읽어나간 저는 ‘양심의 가책’과 같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흔들리는 위험한 순간들을 겪고, 또 ‘힘에의 의지’와 같이 처음 들었을 때에는 즉각적인 거부감이 일었던 개념들이 사실은 제 편견이나 사고 깊이의 부족에서 기원한 오해였다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참으로 우매한 목적에서 시작했던 여정이었지만 조금씩 ‘철학’이란 무엇인지, ‘철학함’이란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답변해나가는 여정으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이 책만으로 니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또한 저 자신도 니체를 전문가 수준으로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분들에게 ‘니체 사상의 정수는 이러하다’라고 자신있게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 니체 철학이 지닌 그 특성과 잠언적 성격이 우리 자신의 경험과 가치 부여들을 되짚어보는데 있어 제격이라는 점만큼은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할 때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도서를 함께 읽어나가고 토론하는 경험이 우리 자신의 ‘신’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일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24. 경남과고 36기 독서 모임 ‘날적이’: 8월 모임계획서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中 ‘II. 도서 선정의 이유’. 2024.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