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선생님과의 짧은 토론

2021-02-08 0 By 커피사유

오늘 오후에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과 최근 내가 서울대학교 글쓰기 평가로 제출한 글에 대한 짧은 토론을 했다. 금일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에 대한 독서 모임에서 우연히 내가 이야기를 꺼낸 것이 발단이라면 발단이 되었다. 고맙게도 몇 가지 검토 의견을 보내주신 선생님 덕분에 이미 최종 제출해버렸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은 글로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과의 짧은 토론을 묵혀 두기 싫어서 여기에 이렇게 전문을 실어 둔다.

선생님: 대충 오타만 수정.
선생님: 마지막 <저항>이란 말에 의미를 두어보렴.
선생님: 그 <저항>이 사실은 결정론이라는 우리 운명에 대한 저항이고, 그것이 사실 <자유의지>라고 말해보렴.
선생님: 우리에겐 저항할 자유가 있다!
선생님: 이 정도. ㅎㅎㅎ

선생님: 오이디푸스 줄거리 부분은 과감히 줄이거나 삭제하고, 차라리 너희 반 토론 논제를 조금 논해보는 게 좋을듯함.
선생님: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범죄자 찾기를 계속한 그 작품의 플롯>이 사실은 우리 인생의 플롯이고, 네 꿈의 플롯이지 않을까?

선생님: 그 플롯은 사실 <저항의 플롯>이지.

선생님: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무모순성의 회복>이란 절을 읽었기 때문일 테지.
주석: <무모순성의 회복>이란 절은 당일 토론한 도서 ‘괴델, 에셔, 바흐’에 등장하는 절이다.

선생님: 그러니까 운명론(=결정론)이 늘 언제나 삶의 온갖 모순들을 무모순으로 돌려놓는 이상한 마귀 같다는 생각.

필자: 어떻게 보면 우리의 변명 아닐까요?

선생님: 운명론은 인간의 자유의지까지도, ‘그것도 다 운명일 걸?!’이라는 논리로, 다시 말해 늘 사후에 모든 것을 싸잡아버리는 논리로
선생님: 자유의지까지도 운명론(=결정론)으로 싸잡아넣어버리지.
선생님: 그러니까 마귀인 셈.

선생님: 저항=자유의지.
선생님: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 마귀는

필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어떤 질서에 기대려는 심리. 사실 본능에서 출발한 마귀인 셈이겠지요.

선생님: 그것도 운명이라니까
선생님: 중얼대는 거지.
주석: 이 부분은 시간 차이 때문에 선생님께서 앞서 말씀하시려던 것을 이으신 것이다.

선생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어떤 질서에 기대려는 심리.

필자: 이미 아시잖습니까.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계속 사후에 주장해도, 우리는 계속 그것을 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 그 무한반복을 포기하지 않음.
선생님: 그것이 저항일 테지.
선생님: 그것이 자유의지.

선생님: 불확실성을 어떤 질서에 기대려는 심리는 모든 학문의 꿈 아닐까?

필자: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그 모든 학문의 꿈이 불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수학이나 물리도 아마 ‘불변의 어떤 것’을 찾아헤매는 학문이지 않나?

필자: 본질적으로는 그렇게 생각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선생님: 그니까 우리는 다시 <불가능의 가능성>으로 되돌아옴.

필자: 다만, 괴델의 정리를 생각해보면 그 꿈은 분명히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필자: 그렇죠.
주석: 하단의 ‘그렇죠.’는 시간차로 인해 뒤늦게 선생님의 마지막 문장에 답한 것이다.

선생님: 수정될 필요?

필자: 괴델은 수학에서 그 어떠한 형식 체계도 진리 집합 모두를 완전히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필자: 사실상 수학의 형식 체계에서 그는 증명했지만, 이는 모든 형식 체계로 확장될 수 있기도 하겠지요.

선생님: 우리는 <완벽>을 지향하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지향할 수 밖에.

필자: 거기서 <희망>과 <자유>가 출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유한하니까.
주석: 이 부분은 선생님께서 필자의 문장 이전의 문장을 이으려고 하신 것이다.

선생님: 희망과 자유는 <연대>에서만 가능한 셈!
주석: 이 부분은 필자의 맨 마지막 문장에 대하여 선생님께서 반문하신 내용이다. 시간차가 있었다.
선생님: 나는 죽어도 내 꿈을 이어갈 내 후세가 있으리란 희망. 연대에 대한 희망!

필자: 하지만 우리의 가능성만큼은 무한하겠지요.
주석: 이 부분은 필자가 선생님의 ‘우리는 유한하니까.’라는 문장에 대해 추가한 의견이다.

선생님: 내가 죽어도 내 뜻을 이을 누군가 있을 거란 사실만 확실하다면, 가능성은 무한하지.
선생님: 혼자선 안 돼. ㅎ

필자: <연대>의 존재도 중요합니다만, <완벽>이 아닌 <지금보다도 더 나은 모습>을 지향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생님: 맞아맞아. 그래서 글을 고쳐썼어?

필자: 어떻게 보면 끝이 없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비틀어 생각해보면 끝이 없기 때문에 더 재미 있는 여정이 될 터이니까요.
필자: 아뇨, 아무래도 내일 새벽에 고쳐야 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