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모든 학문의 출발이자 기원이다

2019-09-30 0 By 커피사유

나의 친구들은 항상 ‘철학’이라고 누가 말하면 우선 진절머리부터 치고 보는 이들이다.

그들은, 철학은 어렵고, 지극히 심오하며, 우리가 먹고 사는데 연관도 없을 뿐더러 유용성 또한 없다고들 말한다.

게다가, 그 철학적인 난제들은 정답이 없는데다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몹시 어려운, 매우 ‘문과’스러운 학문이기에 ‘이과’ 성향을 가진 자신들이 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들 말한다.

글쎄, 나는 오히려 ‘철학’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이과’ 성향의 사람들이 더더욱 생각해야 하는 학문이라고 보는데 말이다.

철학의 본질

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의 근본에 관한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이 탐구하는 대상은 참으로 심오하다. 때로는 도덕학과 연관되어 그 경계선이 헷갈리는 때도 많은데, 굳이 예를 들자면 트롤리 딜레마를 통한 인간의 기본 도덕 심리에 관한 탐구와 정의에 관한 논증은 대답하기도 난해할 뿐더러 분류조차도 어렵다. 또한, 때로 철학은 존재성에 관한 질문으로도 줄곧 이어지는데, 이는 나 자신이 항상 다른 이들과 논쟁을 피하는 주제이다. 한 번 논쟁을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그들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만한 다음의 연쇄적인, 계속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이른바 ‘손절’하기 딱 좋은 존재성에 관한 질문들도 던져볼 수 있는 것이다.

  1. 나 자신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맞나?
  2.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양심은 존재하는가?
  3.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상당히 어렵다. 분명히, 어렵다. 허나 나는 철학은 포기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이러한 어려움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어려운 질문들에 대답할 때 많은 성장을 겪는다. 특히, 철학은 삶의 전반에 걸쳐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대답하는 것은 내적으로 상당한 성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기작으로서 매우 효과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과 철학의 중요성

그 누구라도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던가?

설령, 한 순간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았더라도, 어제와 오늘, 내일의 숨가쁘고 바쁜 일정 때문에 그런 질문을,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질적 호기심을 무시했던 것은 아닌가?

또, 그 누구라도 ‘왜 우리는 국가에 소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던가? 이 역시 찰나의 순간에 그저 스쳐 지나가고 무시해도 될 만한 물음이었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작은 물음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해보고 대답하는 과정은,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적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분명히 언젠가 태초의 인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거의 원시 유인원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조금의 진화를 통하여 성장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달빛 아래에서 부서진 나뭇조각들을 주어와서는 부싯돌을 부딪혀 불꽃을 튀겨, 그들만의 캠프파이어를 만들었을 것이고, 분명 그들 무리 중 누군가는 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발 밑에서 빛나고 있는 불들이 하늘에도 충분히 가득한 것을 보고는, ‘저것들은 무엇인가’라며 질문을 던지지 않았겠는가, 이 질문은 그들의 생존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인데, 적어도 그들 무리 중 한 개체는 그러한 무쓸모의 존재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는, 그것을 쫓는 바보같은 짓을 한 번이라도 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가 항상 잊기 쉬운 것은, 그러한 ‘바보’들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철학이라는 것은 ‘왜’라는 질문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왜’라는 질문을 짜증날 정도로 자기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말들에 던지다보면, 결국 우리는 본질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교육 철학과 나 자신이 의견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그 본질이 비록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삶의 의미에 대하여서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삶에 실질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하고, 나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결국, 철학이 그 근본에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모든 학문은 학문의 기본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동기를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철학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냥 나는 모든 학문이 곧 철학과 동치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이과’ 성향이든 ‘문과’ 성향이든 간에(사실 이런 것을 논의하는 것은 별로 중대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문이과 대통합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그저 찰나의 순간을,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그의 시집에서 지적했듯, ‘그저 질문만 던지고 갈 뿐’인 짧은 생애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철학적인 소양은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말하겠다. 철학적인 질문, 난해한 질문들을 회피하는 이들은 결국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과 다름없고, 이들은 그들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며, 그런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애초부터 하지 않는 이들은 이미 ‘죽은 이’이다.

사람의 사고가 깨어있다는 것의 의미는, 그들이 그들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대하여 끊임없이 본질적인 호기심의 욕구에 충족하여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대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없고, 남의 인생 – 특히, 나 자신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인생 – 을 사는 행위는, 나는 자살 행위와 같다고 본다. 자기 스스로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포기하고, 실에 묶인 채로 무대 위에서, 남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마리오네트와 다름 없게 되는 것이므로.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난해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용감히 던져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질문이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하고, 대답하기 어려워서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지라도, 자신이 살아 있음은 자신이 스스로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궁금해하고, 알아가면서 느끼는 것이다. 죽지 않은 정신은 죽지 않은 신념과 죽지 않은 영혼, 죽지 않은 양심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타인을 배려하면서 우리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인생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우리, 스스로에게 재미있는, 조금 어렵다라도 그러한 질문을 하나라도 던져보자.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 재미있고, 분명히 가치있는 답들을 제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