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2023. 3. 2. ~ 2023. 3. 4.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2023. 3. 2. ~ 2023. 3. 4.

2023-03-04 0 By 커피사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짧게 노트에 휘갈긴 것을 그대로 옮겨두는 공간입니다.


시작하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걸작이다. 그는 그를 옭아매는 병마 속에서도 그 반대를 찾은 인물이었으며,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세간에서 〈도끼를 든 철학자〉로 흔히 묘사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는 〈철학자의 시초〉이다.

모든 인간은 어쩌면 데카당과 반(反)-데카당의 변증법적 합일 수도 있다. 니체를 향해 나는 항상 묻곤 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명제는 삶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느 대학의 개강일에 결심한,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가 되기 위하여,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떠나는 나만의 그 정신적인 여정을 하나의 노트에 기록하기로 했다. 나아가, 여기에도 옮겨 공개하기로 했다. 매일 끄적인 흔적들을, 일정 기간을 정해 모아서 한 번에.

이 시리즈는 그러므로 기행문이기도 하고, 나름의 편집증적인 시도이기도 하며, 삶의 흔적이다. 어쩌면 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가 왜 쓰이게 되었는지 비로소 그 이해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일지로 모르겠다. 그렇다. 철학이 여기에 기록될 것이다. 가, 인간이 여기에 기록되려고 할 것이다…….


#1.

〈정신의 사자〉가 언제쯤 〈어린아이〉로 변하게 될 것인가.

대학에서의 극도의 부정 · 거부 · 환멸, 그리고 이 〈혼자 있음으로의 공포〉가 〈비극〉으로 승화되기까지는. 즉 니체 철학의 진정한 실현이 곧 내가 되도록 하는데는 얼마나 걸릴까.

나는 니체 철학을 이해하고 싶다. 머리만이 아닌 내 몸까지. 내 모든 곳, 모든 기관으로.


#2.

삶은 곧 격동기인가? 격동기가 곧 삶인가?


#3.

나는 과학자가 되길 거부한다. 수학자 또한 거부한다. 심리학자든, 생리학자든, 의학자든 ― 나는 그런 일부를 거부한다. 오로지 나는 철학자가 되기만을 원한다.

철학은 온전한 〈해석〉과, 〈가치평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이외 ― 과학 · 수학 따위는 일부의 〈해석〉만을 포함하며, 문학 · 사회학은 〈가치평가〉는 포함하되 일부의 〈해석〉만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4.

알베르 카뮈와 니체는 〈인간에 대한 사랑〉, 또는 〈죽음 앞의 생각〉 ― 즉 철학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둘 모두 〈위대한 정오〉로, 더없는 폭로로, 부정과 파괴, 반대와 반항으로, ‘도끼’로, ‘총’으로 철학을 세운다. 그들은 모두 ‘신’을 죽였고 따라서 ‘사형’당해야 했다. 고독을, 거리감을 그들은 매 문장과 사물 속에 세웠다. 그러나 카뮈는 니체에 도달했는가? 카뮈는 다자이 오사무에게서 벗어났는가?

그는 아직이다. 그는 오사무에게서 니체를 향해 뛰어간다. 셋 모두는 자신들의 소리로 고함지르고 있다. 나는 그것이 비명인지 아니면 하나의 구애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5.

삶은 단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