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학자로의 용기

2023-08-08 0 By 커피사유

근대 프랑스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군 사건, 드레퓌스 대령의 사건을 알게 되었다.

계기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괴델 ,에셔, 바흐』를 읽는 독서 모임에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당시 프랑스의 사회상이 도마에 올랐고 프랑스 사회와 사상의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이 사건이 숙명처럼 그저 따라 나온 것일 뿐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한 마디로 ‘정치적 누명’이 한 개인에게 씌어진 사건이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제3공화국이 역사적 라이벌이었던 독일과의 보불 전쟁에서 패하자, 그 원인을 ‘반역’ 행위로부터 찾으려 했던 이른바 배후중상설의 보편화가 발단이었다. 문제는 무고했던 프랑스 육군의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 대령에게 ‘반역’의 혐의가 씌워진 것이었다. 제대로 된 증거도 하나 없었지만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 그리고 ‘그는 동료들에게 시기심을 사고 있다’는 이유가 그에게 굴러가는 누명의 몸집을 더욱 키웠다. 사법절차는 전적으로 군부의 외압 아래에 진행되었고, 대령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며 그는 부당하게 그의 훈장이나 계급을 박탈당했다. 그는 어느 섬에서 일생 중 총 5년이라는 세월을 제약당해야 했다.

후일 마리-조르주 피카르(Marie-Georges Picquart, 1854-1914) 중령이 우연히 당시의 문헌을 열람하고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없이 드레퓌스 대령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며 사실 보다 의심이 갈 만한 증거들이 더욱이 충분한 다른 용의자를 특정하였으나, 군부는 이 사건을 묻어버리려고 했다.1 그러나 새어나간 이야기들은 소문을 만들었고, 소문은 신문을 타고 여론이 되었으며, 그렇게 프랑스는 두 쪽이 난 것이었다. 드레퓌스 대령의 재심을 요구하는 ‘드레퓌스파’와 그 재심을 반대하는 ‘반드레퓌스파’로 말이다.

문제는 당시 프랑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가톨릭 및 보수 세력은 ‘군의 위신’을 너무나도 강조하여 보는 시각을 가진 나머지, 군 자체를 무오류의 조직으로 간주하고 오심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체로 당시 프랑스 사회의 주된 여론이었고, 군국주의와 국가주의가 만연한 프랑스의 사회는 1898년 1월까지 흘러간다.

그 때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가 고발했다. (J’Accuse…!)2

한 개인이 억울하게 국가기관에 의한 누명을 쓰고도 재심을 거부하는 여론이 우세한 이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받은 프랑스의 대문호가 1898년 1월 13일에 신문 〈여명(L’Aurore)〉에 프랑스 제3공화국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낸 것이다. 사회 여론 자체가 ‘드레퓌스의 재심을 거부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와중에 주요 언론들은 그의 공개 편지를 게재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 작은 신문이었지만 기명으로 글을 실었다. 심지어는 그 자신을 중죄 재판소로 소환하여 심문하라고 쓰기까지 했다. 압도적이고 광신적인 여론 속에서도, 그는 고발했다…! (J’Accuse…!)3

당연히 그는 여론의 물매를 맞았고, 반드레퓌스파는 그의 글을 길거리에서 불태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초상을 목매달기까지 하고, 폭동을 일으켜 유대인 상점을 약탈하거나 유대인에게 상해를 입히기까지 했다. 더욱이 군부는 에밀 졸라에게 군법회의를 모략했다며 유죄 선고를 내렸기에 그는 런던으로 망명해야 했고, 후일 프랑스로 귀국한 1902년 굴뚝 청소부가 누군가의 지령에 의해 굴뚝을 막아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에밀 졸라의 ‘고발’이라는 역사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현실과 이상(당위)의 타협이라는 큰 문제들 앞에서 지금까지 대체로 나는 현실과 타협하는 쪽을 택했다.4 그렇다면 만약에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다면, 나는 폭압적이고 위험한 여론의 화염에 맞서서, 사회적 매장을 각오하고서라도 나 자신의 신념을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에밀 졸라와 같이, 나는 과연 사회를 고발(Accuse)할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가 믿는 의(義)가 그 옳음을 확정할 수 없는 본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는 사회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가?

그러한 물음이 나 자신의 앞에 당도하노라면 나는 도저히 물론 그러겠거니 하고서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솔직하게 여전히 두려운 것이다. 나는 잘못된 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사회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잘못된 것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무섭게, 두렵게 만든다. 나 자신 안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 그것이 죽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발할 수 있는가? 이는 결국 사회 문제에 반할 수 있는가? 또는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과 정확히 같은 물음이다.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설파하면서, 그러한 용기를 가지겠다고 말하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과연 나는 에밀 졸라가 그러한 것처럼 나 자신의 일생을 여론의 업화(業火)에 유감없이 던지면서라도 나 자신 안의 최후의 인간성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에 대해 두렵게 만든다.

나는 대학에 있다. 그리고 대학은 에밀 졸라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막상 에밀 졸라의 고발과 그의 운명을 다시 한 번 살펴볼 때, 나는 여전히 스스로가 과연 그의 정신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인물인지, 대학(大學)이라는 그 두 글자에 걸맞는 사람이 맞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 및 참고문헌

  1. 솔직히 이러한 역사적인 이유로, 나는 군의 ‘사회적 필요성’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되 그럼에도 신뢰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집단임이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2. 동명의 부제를 가진 칼럼을 중앙일보에서 봤는데, 마침내 그 의미를 역사적 맥락까지 고려하여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3. Voilà donc, monsieur le Président, les faits qui expliquent comment une erreur judiciaire a pu être commise; et les preuves morales, la situation de fortune de Dreyfus, l’absence de motifs, son continuel cri d’innocence, achèvent de le montrer comme une victime des extraordinaires imaginations du commandant du Paty de Clam, du milieu clérical où il se trouvait, de la chasse aux « sales juifs », qui déshonore notre époque. … (중략) … Je n’ai qu’une passion, celle de la lumière, au nom de l’humanité qui a tant souffert et qui a droit au bonheur. Ma protestation enflammée n’est que le cri de mon âme. Qu’on ose donc me traduire en cour d’assises et que l’enquête ait lieu au grand jour! / 대통령 각하. 바로 이렇게 해서 사법적 오판이 저질러졌습니다. 게다가 드레퓌스의 도덕성, 부유한 환경, 범죄 동기의 부재, 끝없는 무죄의 외침은 그가 뒤 파티 드 클람 소령의 기발한 상상력, 그를 둘러싼 종교적 환경, 우리 시대의 불명예인 ‘더러운 유대인’ 사냥 등의 희생자였음을 더욱 확신하게 합니다. … (중략) … 저는 그토록 큰 고통을 겪은 인류, 바야흐로 행복 추구의 권리를 지닌 인류의 이름으로 오직 하나의 열정, 즉 진실의 빛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의 불타는 항의는 저의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중죄 재판소로 소환하여 푸른 하늘 아래에서 조사하시기 바랍니다!
  4. 구토가 나오기 직전인 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에 나 자신을 적응시키는 쪽을, 더욱 메스꺼운 대학 풍토에 온몸으로 항의하기보다는 무관심해지는 쪽을, 누군가의 견해가 확고하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예의’라는 그 편리한 올가미를 이용해 침묵을 택하는 쪽을 택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