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러하듯: 소풍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러하듯: 소풍

2024-02-26 0 By 커피사유

소풍

한 편의 시가 되는 우정, 어쩌면 마지막 소풍이 시작된다

Kim Yong-gyun
20242h 00min
Overview

"세상살이가 한바탕 소풍인데, 갈 때도 그랬으면 좋겠다." ― 작중 은심의 말처럼 우리는 죽음과 삶 한가운데에서도 무언가를 준비해서 즐기거나 다른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수고를 들인다. 결국 그 모든 것들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미루고 가렸던 죽음과 생의 향기가 영화 전반에 걸쳐 솔직하게 묻어있다.

Metadata
Director Kim Yong-gyun
Runtime 2h 00min
Release Date 2024-02-07
Details
Movie Media Cinema
Movie Status
Movie Rating Excellent
Actors
Starring: Na Moon-hee, Kim Yeong-ok, Park Keun-hyong, Ryu Seung-su, Lee Hang-na, Gong Sang-a, Im Ji-gyu, Choi Sun-ja, Lee Yong-i, Han Tae-il, Gwag Ja-hyeong, Seong Byeong-suk


한줄평

“미루고 가렸던 죽음, 그러나 분명한 생(生)의 내음.”


총평

#1.

Memento Mori.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불편하지만 분명한 참인 명제. 사람들은 자신이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일상 속에서 잘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속 한 구석에서 무서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있지만, 자신에게 달려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이 우리 생의 일상이라 죽음을 떠올리는 것 또한 하나의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2.

영화 ‘소풍’의 서사, 그리고 그 서사가 인물과 같이 구성하는 전반적인 분위기란 우리가 ‘소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심상과는 거리가 확실하게 멀다. 영화는 은심(나문희 扮)이 오래 전 떠나온 남해의 고향 마을로 오랜만에 내려가 친구이자 사돈 지간인 금순(김영옥 扮)의 집에 머물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 두 사람과 오래 전 급우들 · 마을 사람들과의 우정 혹은 갈등의 서사들을 주로서 다루기는 하지만, 주연은 물론 그 주변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이 겪는 사건 하나하나는 잠시 휴식하거나 자연이나 명소 등지를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칭하는 ‘소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이 영화는 지나치게 솔직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숨김없이 모두 비춘다. 우선 나이가 든 주연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임이 처절할 정도로 묘사된다. 은심은 파킨슨 병을 진단받아 손을 덜덜 떨면서 약을 복용하고 있고, 금순은 요통과 골다공증으로 일어나지 못해 대소변을 화장실까지 미처 가지 못하고 방 안에 누워 기저귀로 해결해야 할 정도이며, 은심을 첫사랑으로서 짝사랑했던 태호(박근형 扮)는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끝끝내 모두에게 숨기다가 결국 작중에서 사망하고 만다.

주연들이 생애 주기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동시에 이들이 사라져가는 추억의 장소들과 세월들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의미한다. 영화는 어느 것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은심, 금순 그리고 태호의 남해 고향 마을은 리조트 재개발 사업을 앞두고 주민과 공사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고, 그들이 다녔던 중학교는 인구 부족으로 폐교되었다. 재개발 사업 반대를 위한 주민 집회 뒷풀이 자리는 주변이 조용하고 어두운 가운데 자그마한 바닷가 근처의 음식점의 단 한 창문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몇몇 청년들(작중 금순이 독백했듯, ‘아파트’가 넘처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아파트’마저 살 형편이 안 되거나 몇몇 향촌 중시적인 청년들)만이 어르신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분명 과거에는 앞과 뒤는 물론이거니와 옆, 그리고 그 옆에도 사람이 살던 마을은 시간 앞에서 무색하게도 점차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과 이들의 관계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진다. 은심과 금순의 고향 친구 중 한 명은 타국으로 이민간 자식들에게 양로원으로 버려진다. 감독은 당초 자식들과 함께 이민을 갔던 줄 알았던 친구가 양로원에서 마음과 정신 모두가 거의 무너지다시피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받는 주연 3인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비춘다. 감독의 솔직함은 사업 사기가 들통나 가맹점주와의 단체 소송에 휘말리고 있고, 심지어 그중 하나가 투신하여 자살해 큰  위기에 몰린 은심의 아들과 은심 사이의 재산을 둘러싼 갈등까지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에도 이르기까지 한다.

#3.

여기까지 볼 때 이 영화는 그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른 평가를 내리기 전에 우리는 ‘소풍’이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 정체를 다시 한 번 고민해보아야 한다.

‘소풍’을 우리가 일상을 잠시 내려두고 명소나 자연을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본질의 절반만을 본 것이다. ‘소풍’을 위해 우리가,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소풍인 것’과 ‘소풍이 아닌 것’ 그것의 경계는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소풍’이란 무엇인가를 우리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소풍을 갔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소풍을 가서 다른 이들과 어울렸던 경험은 의심할 여지 없이 즐거웠지만, 그 소풍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때에는 준비, 즉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피곤한 와중에도 자그마한 도시락 가방에다가 직접 싼 김밥이나 유부초밥 등을 넣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당장 내가 소풍을 간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갈지를 선정하고, 또 가서 무엇을 먹기 위한 준비물 혹은 지참금을 준비해야 하며, 또 무슨 일들을 할지를 계획하고 미리 찾아봐야 하지 않던가? 소풍을 가기 위한 준비 과정들이 간단하지 않은 것에서 더 나아가, 소풍에서 돌아온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점도 재고해볼 만하다. 돗자리를 접고 모든 짐들을 다시 집어 넣은 뒤에 집으로 돌아가는 이동수단에서, 우리는 모든 즐거운 일들이 종료되었으며 이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가 뜨면 출근 또는 등교라는 반복이 우리를 마주하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짐작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소풍’은 비단 긍정적 시어로만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풍은 긍정적이고 반-일상적인 경험과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을 두루 지시하는 중의적인 말인 셈이다.

#4.

영화는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의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관객이 불편할 정도에 이르기까지 솔직하게 비추는 한편, 그 속에서도 잠시 고향의 곳곳을 방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도 모두 솔직하게 비춘다. 금순과 은심, 그리고 태호는 자신들의 병을 자식들과 주변인들에게 숨기면서도 기분 좋은 소풍을 꿈꾸고 또한 함께 시간을 보내는 현재를 즐기기도 한다. 시를 쓰고, 과거를 추억하고, 꽃과 경치를 함께 다시 둘러보기도 한다.

작중 절정은 허리가 아파 소풍을 내일로 미루어야 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아픈 몸을 이끌고 김밥을 싸고 집을 청소하며, 너무 높고 또한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걸어 올라간 금순과 은심이 언덕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관객을 뒤돌아보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분명 한 발자국 앞은 낭떠러지인데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향하던 두 배우가 관객을 돌아보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현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소풍을 가는, 끝까지 살아나가는 인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섰지만 돌아보고 함께 손잡으며 웃을 수 있는 인간, 그렇지만 여전히 요통과 파킨슨에 시달리는, 그리고 현실에 시달리는, 죽음 앞에서도 계속 살아나가고 있는 인간 바로 그의 본질을.

#5.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크레딧과 함께 가수 임영웅 씨가 주연 나문희 배우와의 인연으로 영화에 헌정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가사는 해변가의 모래 알갱이가 말하는 듯 쓰여 있지만, 사실 우리의 생이 무엇을 남기는지 그리고 우리의 생이 어떠한 방식으로 흘러가는지를 정확히 고찰해보면 마지막 곡의 잔잔함과 부드러움이 또 다른 의미로 와닿는 것 같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자국을 내어요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그대 바람이 불거든
그 바람에 실려 홀연히 따라 걸어가요
그대 파도가 치거든
저 파도에 홀연히 흘러가리

그래요 그대여 내 맘에
언제라도 그런 발자국을 내어줘요
그렇게 편한 숨을 쉬듯이
언제든 내 곁에 쉬어가요

그대 바람이 불거든
그 바람에 실려 홀연히 따라 걸어가요
그대 파도가 치거든
저 파도에 홀연히 흘러가리

그래요 그대여 내 맘에
언제라도 그런 발자국을 내어줘요
그렇게 편한 숨을 쉬듯이
언제든 내 곁에 쉬어가요
언제든 내 맘에 쉬어가요

사족

영화에서 시로도 등장하고 또한 자주 언급되는 해당화는 5~7월에 홍자색으로 피며, 향기가 강한 아름다운 꽃이지만 한때 우리나라 전 해안 사지에서 볼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드문 꽃이다.

끝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하고 또한 시의 소재로도 쓰여지는 ‘꽃’이 바로 이 해당화라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