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라는 이름의 벽 앞에서

2021-07-09 0 By 커피사유

이하의 내용은 2021. 7. 9.에 필자가 Brunch에 작성한 「’지배’라는 이름의 벽 앞에서」라는 글의 일부를 그대로 가져온 것임을 서두에 밝힙니다. 그리고, 해당 글은 필자가 2020. 7. 31.에 작성한 「사유 #4」의 내용을 다듬어 다시 발표한 것임도 주석으로 첨가해둡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우울의 발단이 된 문제의 질문은 “왜 그 수많은 군인들은 ‘상명하복’에 지배되는가?”라는 것으로, 우울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어 보이는 비교적 평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답으로 스톡홀름 증후군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법이 그런 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법은 적어도 기본적으로는 민중에 의해 설계되고 제정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군인을 포함하는 민중이 그 스스로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할 리가 없다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가정이 사고를 비집고 들어오면서 무언가 꽤 불편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답은 사실 우리가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지배’를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도 맞지만, 사실 그 실면은 ‘정권 심판’의 정도에서나 드러나는 정도일 뿐이며, 사실 우리 스스로가 실질적으로 지배를 조절할 수 없지 않느냐고. 즉, 우리는 시스템에게 지배당하는 영향이 더 높은 개인일 뿐이라, ‘벽’에게 지배당하는 ‘알’들일 뿐이라 군인들, 그리고 심지어 우리들까지 ‘상명하복’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그러면 여기서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는 그 불편한 목소리를 맞받아쳤다. 맞받아친다고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목소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군인들은 상관의 말과 그것을 거부하면 스스로에게 떨어지는 형벌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으며,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 – 이를테면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학생 주임 선생님부터, 가족과 친척, 모 회사의 중역들, 삼성의 회장, 국회의원과 국무총리, 그리고 대통령 – 은 (적어도 명목적으로는) 법에 의한 지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불편한 목소리가 나에게 반환한 대답은 나의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타(他).”


 목소리의 의외의 대답에 당황한 나였지만, 나는 목소리의 논증을 어떻게든 거부하고 싶은 내적 심리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어서 목소리의 대답 속에 품은 자기 모순을 드러내는 식으로 그의 주장을 무너뜨리리라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만일 타(他)가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이라면, 모든 타(他)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지배의 존재를 보장하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목소리를 위한 질문이었으므로, 독자 여러분들을 위하여 이 질문에 대한 다른 표현 방식도 병기해야 할 것 같다.

 “타인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지배의 존재를 보장하는가? 즉, 서로 상호작용하는 두 개인이 있다면, 이들 두 개인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지배 관계를 포함하는가?”

그 당시의 나는 두 개인 사이의 모든 관계가 지배 관계를 포함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아주 확고했으므로, 이제 목소리가 드러난 그의 논점의 모순으로 인하여 자멸할 것이라 예상하며 목소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조금 지나 돌아온 목소리의 대답으로 인하여 자멸한 쪽은, 목소리가 아닌 나였다.

 “그렇다.”

 완전히 제대로 당한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어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동등하게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주의 깊게 듣다 보면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를 예로 들어보도록 할까. 이 경우는 당연히 시험 문제의 출제권과 학생부의 작성 권한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이 일반적으로 더 ‘센 사람’이라고 인정되며, 자본주의 사회라는 이 사회 전반에서도 임의의 두 개인을 선택하더라도 ‘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항상 존재하므로, 더 ‘센 사람’을 우리는 선별할 수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를 외치고, 차별을 철폐하는 수많은 제도와 법을 마련하는 사회지만, 당장 ‘대통령’과 ‘나’를 비교해보라. 대통령이 더 센 사람이 아니던가? –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는 ‘누가 더 힘이 세고, 누가 더 힘이 약한지’는 손쉽게 판별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 결과는 두 개인 사이의 어떤 관계는 반드시 ‘지배 관계’를 포함한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가?”

 말문이 막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은 아주 오랫동안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