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총서 #4. 니체의 사상과 논의

연구총서 #4. 니체의 사상과 논의

2022-06-29 0 By 커피사유

연구총서 시리즈는 커피사유가 작성한 레포트 · 연구 기록 · 소논문 등 학술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공간으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분석을 여러 방면에서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이 글은 2022학년도 1학기, 필자가 수강한 서울대학교 박찬국 교수님의 〈서양철학의 고전〉 수업의 과제로 작성된 레포트임을 밝혀둡니다.



I. 서론

‘힘에의 의지 (Wille zur Macht)’. 니체 철학을 대표한다고 생각될 수 있을 이 개념은 니체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은 물론이며 각종 오해까지 낳았다. ‘힘에의 의지’라는 표현은 평등과 인류애를 강조하는 오늘날 대중들의 도덕적 관념과 상호 충돌하기도 하며, 또한 자칫 ‘물리적 힘과 충돌을 갈망하는 의지’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니체 철학 특유의 뉘앙스 때문에 니체 철학은 한때 파시즘이나 나치즘의 기반을 이루는 사상으로까지 오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찬국(2005)이 지적하였듯, 비록 “니체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가이고 초인들에 의한 귀족주의적인 지배를 주창”하기는 했지만 “니체를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이데올로그로 보는 루카치식의 견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1 ‘힘에의 의지’를 니체 생존 당시의 유럽, 즉 기독교적 가치관이 붕괴하고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태동하여 퍼져나가던 유럽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며 니체 철학에서의 ‘강조점’들과 함께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니체의 철학은 극단적인 순수나 내셔널리즘을 논하는 나치즘이나 파시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힘에의 의지’는 니체가 가치와 의미의 상실에 빠져있던 유럽, 염세주의와 허무에 빠진 유럽을 위해 도출한 하나의 처방이자 의미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본고는 니체 철학에서의 ‘힘에의 의지’ 개념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힘에의 의지’를 중심으로 니체 사상을 상세히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우선 니체에게 영향을 미친 당대 유럽의 쇼펜하우어 철학과 바그너의 사상을 살펴보겠다. 이후 이러한 사상의 배경 위에 정립된 니체의 〈예술 철학〉, 〈신의 죽음과 니힐리즘〉, 〈군주도덕과 노예도덕〉, 그리고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 같은 철학 사상과 ‘힘에의 의지’ 간의 연결을 살펴본 뒤, 이들 연결 관계를 바탕으로 니체 철학에 대한 기존의 가장 큰 오해인 ‘파시즘 · 나치즘과 니체 철학의 연관성’이 왜 니체의 ‘힘에의 의지’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에서 근원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II. 니체의 사상

II.1. 쇼펜하우어, 바그너와 니체 철학

쇼펜하우어와 바그너가 니체에게 미친 영향을 언급하지 않고서 니체 철학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저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니체에게 미친 영향은 특히 그러하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당초 조건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니체를 철학자로 돌아서게 한 것도 있지만,2 니체 철학의 이해에서 그의 사상이 중요한 본질적인 이유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의지’로서의 설명에 대한 극복과 발전이 니체 철학에서의 ‘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철저한 염세주의 철학관을 전개했다. “인간의 삶은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라는 그의 말이 대표하듯, 그는 인간의 삶을 기본적으로 욕망과 권태 등으로부터 근원하는 고통의 연속으로 보았다. 그의 염세주의 철학은 쇼펜하우어 자신이 현상계의 배후로서 제시한 ‘생존 의지’와도 맞닿아 있다. 쇼펜하우어는 사물과 생물이 존재하는 현상계의 배후에는 일종의 ‘우주적인 의지’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의지는 근본적으로 ‘생존 의지’의 특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는 따라서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생존 욕구 · 의지를 가지며, 동시에 자신의 의지를 세계 전체의 의지로 실현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의지를 놓고 끊임없이 투쟁하며 갈등을 일으킨다고 여겼다. 현상계 배후의 거대한 ‘우주적인 의지’가 가지는 ‘생존 의지’적 속성 때문에 현상계를 살아가는 인간은 끊임없는 갈등과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3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의지’로 파악하고자 하는 방법론은 받아들였지만, 쇼펜하우어와 달리 현상계를 지배하는 의지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강력한 열망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고양과 강화를 지향하는 의지’라고 보았다. 모든 생물은 ‘생존 의지’도 물론 가지고 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물이 가진 ‘힘에의 의지’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 개념은 쇼펜하우어의 ‘생존 의지’에 대한 극복이면서도 계승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4

음악가이면서도 무정부주의자였던 바그너(Richard Wagner)가 니체에게 미친 영향도 결코 간과될 수 없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우주적인 의지’를 감정선들을 통해 표현하는 음악이야말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악과 혁명》과 같은 바그너의 저작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정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믿음을 잘 보여준다.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예술을 연결한 바그너의 사상은 니체가 그리스 비극을 중심으로 예술의 역할과 기능을 논한 《비극의 탄생》, 그리고 니체 예술 철학의 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5

II.2. 니체 철학과 ‘힘에의 의지’

니체 철학의 ‘힘에의 의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에 대한 이해가 모두 선행되어야 한다. 니체의 〈예술 철학〉은 이들 중 초기 사상에 해당하며, 그리스 예술과 비극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니체는 예술을 ‘인간을 관조 · 관망적 상태에 빠지게’ 하는 ‘아폴론적인 것’과 ‘인간을 감정 · 감각적 도취나 환희 · 합일의 상태에 빠지게’ 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구분했으며, 그리스 비극은 이 둘 모두를 가지고 있는 예술이라고 평가했다. 그리스 비극의 서사 · 무대 · 장치는 아폴론적인 것으로, 코러스(Choir)를 포함한 음악과 춤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 평가한 니체는 그리스 예술을 염세주의와의 대결로 재해석한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인들이 삶의 염세주의적인 면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 본 것이다. 물론 그리스 비극에 대한 논의에서 이성을 중시하는 기존 서양 철학에서의 주지주의(소크라테스주의)는 그리스 비극에서 묻어나는 세계를 긍정하는 의지를 경시시키는 풍조를 가져와 그리스의 비극 정신을 몰락시켰다는 니체의 지적도 빼놓을 수는 없지만, 니체의 〈예술 철학〉에서 가장 크게 강조된 것은 염세주의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 자체를 긍정해내는 태도로서의 그리스 예술이다.6 ‘염세주의의 극복과 삶의 긍정’은 니체의 후기 사상 중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

니체의 후기 사상 중 하나인 〈신의 죽음과 니힐리즘〉은 ‘힘에의 의지’의 배경에 있는 니체 당시 유럽 사회의 기독교적 가치관의 붕괴와 염세주의 철학의 유행에 대한 니체의 견해라는 점에서 몹시 중요하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니체의 ‘신의 죽음’은 말 그대로의 ‘신의 죽음’으로라기보다는 기독교적 사상의 붕괴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 니체는 이전까지 유럽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던 전통 형이상학과 기독교 정신의 한계를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서 이원론이 몰락했고, ‘니힐리즘’이 지배하는 일종의 과도기적 중간 상태가 도래하였다고 생각했다. 기존 가치가 붕괴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상실하며, 허무함과 염세주의를 느끼는 일시적인 상태를 ‘니힐리즘’이라고 정의한 니체는 다만 ‘니힐리즘’적 시기는 중간 상태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 니힐리즘’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상실과 체념 · 염세주의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로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사상을 탐색하는 시기로서의 ‘니힐리즘’을 주장한 것이다. 이때 니체는 능동적 니힐리즘에서 사람들이 새로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사상은 ‘힘에의 의지’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어떤 가치와 규범이 스스로를 고양 · 강화시켜주면 유지 또는 도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하는 주도적 움직임의 출발점 · 구심점이 니체는 ‘능동적 니힐리즘’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7

〈군주도덕과 노예도덕〉으로 대표되는 니체의 도덕론도 니체 후기 사상에서 중대한 위치에 있다. 니체는 기존의 도덕 분류를 ‘노예도덕’으로 분류하면서 이와는 다른 도덕관인 ‘군주도덕’을 제시하였다. 니체는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기존의 기독교적인 도덕관은 ‘노예도덕’으로서, 경쟁과 투쟁이 가져다주는 개인의 성장과 ‘힘에의 의지’에 대한 올바른 양태로의 실현을 방해한다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반면 ‘노예도덕’과 대비되는 니체의 ‘군주도덕’에서는 사람들을 그가 가진 긍지 · 힘 · 능력을 기준으로 열등한 이와 탁월한 이로 구분한다. 니체는 탁월한 이는 ‘용기 · 지혜 · 긍지, 그리고 힘과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 열등한 이는 ‘소심하고 비굴하며, 원한에 차서 거짓말하고 힘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라고 보았다. 니체의 도덕관에서 탁월한 이는 과거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으며 현재 주어지는 상황에 대해 탄력적 · 창조적으로 대처하고 이들을 극복해나가는 인간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는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서의 ‘힘에의 의지’의 행사라는 점에서 ‘힘에의 의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8

니체의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 사상은 ‘힘에의 의지’를 올바르게 실천하는 인간 삶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논의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니체 후기 사상 중에서도 가장 정점에 있다고 평할 만하다. 니체는 고통으로 가득 찬 우리의 삶이 다시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삶 전체를 기꺼이 다시 살려고 하는 태도,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는 태도인 ‘운명애’를 크게 강조했다. 삶의 고통 앞에서 데카당스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직면하고 고통과 맞서는 인간이 진실로 바람직한 인간이라고 본 것이며, 동시에 삶에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 과거의 모든 행위에 대한 결과 그리고 책임까지도 모두 긍정하는 인간을 강조한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직면하고 긍정하고자 할 때 엄청난 ‘힘의 고양’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 ‘힘의 고양’은 ‘자기 자신을 강화 · 고양시킴으로써 충분한 힘을 느끼려는 의지’가 올바르게 실현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니체의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 또한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9


III. 파시즘 · 나치즘과 니체 철학: ‘힘에의 의지’에 대한 오해

서론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니체 철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을 ‘힘에의 의지’는 니체 사상에 대한 해석의 곤란은 물론 니체 철학은 파시즘으로 이어진다는 루카치 등의 비판까지 낳았다. 그러나 파시즘 · 나치즘과 니체 철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은 니체 사상의 전반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심히 고려하지 못한 채로 이루어진 ‘힘에의 의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영진(2012)이 지적하고 있듯,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그것이 자기의 결점을 극복하고 ‘초인’적 차원으로 상승하기 위한 자기초극의 기율인가, 아니면 다른 존재를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의지인가 하는 점”인가에 있다.10 니체 철학과 파시즘 · 나치즘의 연결점을 주장하는 이들은 ‘힘에의 의지’가 후자를 대표한다고 보기 때문에, ‘힘에의 의지’의 실현을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니체 철학은 권력 및 폭력에 대한 인간의 추구를 합리화한다고 본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니체 철학의 개념들과 ‘힘에의 의지’와의 관계를 살펴볼 때, 니체가 자신의 철학에서 강조한 것이란 ‘권력 및 폭력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니체가 강조한 것은 자기초극으로서의 ‘힘에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능동적 니힐리즘’은 ‘힘에의 의지’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가치와 규범이 우리를 고양 · 강화시켜주면 유지 또는 도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하는 움직임, 즉 인간 자신의 고양과 강화를 위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군주도덕’에서 니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 주어지는 상황에 대해 탄력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처해나가고 극복하는 인간’이다. 인간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직면하고 긍정하는 태도를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니체의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였다. 니체 철학의 전반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폭력성’과 ‘지배’가 아니며,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숙할 때, 주어지는 삶의 고통을 극복해 내었을 때의 ‘고양’과 ‘강화’이다. 니체는 신체적 폭력이나 잔혹함을 포함하는 방식, 즉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으로서의 ‘힘에의 의지’를 강조하지 않았다. 니체가 강조한 것은 스스로를 극복하는 형태로서의 ‘힘에의 의지’였다.

니체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당대 유럽 전역이 물들어 있었던 삶에 대한 염세주의적인 태도라는 점도 니체의 철학을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연결지어 이해하려는 시도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니체는 삶에 대한 의미와 인간의 모든 욕구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염세주의의 반대로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였다. 니체의 〈예술 철학〉은 그리스 비극의 ‘염세주의에 대한 극복’이라는 측면에 집중하고 있으며,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는 자신의 삶이 끝없이 반복되는 염세주의적인 상황 속에서도 반-데카당스적인 움직임, 즉 모든 고통과 무의미를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인간에 집중하고 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염세주의에 대한 극복을 위해 제시된 것이지, 나약함에 대한 비판으로서 또는 권력 추구에 대한 예찬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파시즘과 나치즘에서의 대외적 침략 정책과 무력 추구 등은 니체 철학에 의하여 합리화될 수는 없다. 니체 철학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 것은 ‘자기 극복’이라는 점, 그리고 니체 철학은 ‘염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제시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힘에의 의지’는 ‘다른 존재를 지배하고 정복하려는 의지’라기보다는 ‘삶의 고통과 무의미함 앞에서도 삶 그 자체를 긍정하면서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루카치 등이 가졌던 ‘파시즘과 나치즘으로 이어진 니체 철학’이라는 관점은 따라서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IV. 결론

지금까지 본고에서는 ‘힘에의 의지’를 중심으로 니체의 사상을 고찰하고, ‘힘에의 의지’에 대한 해석 중 하나인 ‘파시즘 · 나치즘과 니체 철학의 긴밀한 연관’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였다. 쇼펜하우어 · 바그너 사상의 토대 위에 구축된 니체의 사상은 ‘힘에의 의지’는 ‘타인에 대한 지배와 정복을 합리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초월과 극복’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 본고에서는 강조하였다. 본고에서는 니체의 〈예술 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염세주의에 대한 대항’, 〈신의 죽음과 니힐리즘〉에서 강조되는 ‘새로운 가치 창출 및 자기 극복을 위한 능동적 니힐리즘’, 〈군주도덕과 노예도덕〉에서 언급되는 ‘용기 · 지혜 · 긍지 그리고 힘과 능력을 갖춘 탁월한 인간’, 그리고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에서의 ‘고통에 맞서고 삶을 긍정할 때의 힘의 고양’을 살펴보았으며, 이와 같은 고찰에 근거하여 니체 철학의 대표 개념인 ‘힘에의 의지’란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것을 합리화하는 철학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는 반-데카당스적인 철학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확인했다.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니체 철학은 그 대표적인 개념인 ‘힘에의 의지’라는 표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뉘앙스 때문에 평등 · 인류애와 같은 오늘날의 도덕적 관념과 상호 충돌하거나 ‘물리적 힘과 충돌을 갈망하는 의지’로 읽히면서 수많은 오해를 낳았다. 파시즘과 나치즘의 기반을 이루는 사상으로서 니체 철학을 조명하는 시각은 그러한 오해 중 가장 대표적이다. 그러나 니체 철학은 타인에 대한 정복과 폭력을 주장하는 파시즘과 나치즘을 결코 합리화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히려 니체 철학이 담고 있는 내용이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회의주의적 관점, 즉 염세주의와 허무에 대한 니체만의 대답이자 처방, 즉 ‘자기초극’이다. ‘힘에의 의지’로 대표되는 니체 철학은 그리스 비극에 대한 그의 고찰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고통을 극복하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니체 철학은 ‘힘의 철학’이라기보다는 ‘극복의 철학’이다.

주석 및 참고문헌

  1. 박찬국. “Jan Rehmann, Postmoderner Links – Nietzscheanismus – Deleuze & Foucault – Eine Dekonstruktion, Argument Verlag, 2004.” 인문논총, 54.0 (2005). 337.
  2. 박찬국. “2. 니체의 생애 2 –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 SNUON – 현대철학사조: 현대철학의 거장들, 서울대학교 업로드, http://etl.snu.ac.kr/mod/vod/view.php?id=1842503.
  3. Ibid.
  4. Ibid.
  5. Ibid.
  6. 박찬국, “3.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SNUON – 현대철학사조: 현대철학의 거장들, 서울대학교 업로드, http://etl.snu.ac.kr/mod/vod/view.php?id=1842504.
  7. 박찬국, “5. 신의 죽음과 니힐리즘의 대두(1).” SNUON – 현대철학사조: 현대철학의 거장들, 서울대학교 업로드, http://etl.snu.ac.kr/mod/vod/view.php?id=1842506.
    박찬국, “1. 신의 죽음과 니힐리즘의 대두(2).” SNUON – 현대철학사조: 현대철학의 거장들, 서울대학교 업로드, http://etl.snu.ac.kr/mod/vod/view.php?id=1842507
  8. 박찬국, “1. 군주도덕과 노예도덕.” SNUON – 현대철학사조: 현대철학의 거장들, 서울대학교 업로드, http://etl.snu.ac.kr/mod/vod/view.php?id=1842512.
  9. 박찬국, “6. 영원회귀사상과 운명애(Amor Fati).” SNUON – 현대철학사조: 현대철학의 거장들, 서울대학교 업로드, http://etl.snu.ac.kr/mod/vod/view.php?id=1842517.
  10. 오영진. “니체와 로렌스: “권력에의 의지”의 역사.” D. H. 로렌스 연구, 20.1 (2012):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