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10. 독백(獨白)과 선언(宣言)

사유 #10. 독백(獨白)과 선언(宣言)

2021-01-08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이제는 너무 지쳐 버린 나 자신, 그리고 학교


이번 글은 경남과학고등학교 졸업을 맞아 2021학년도 교지에 투고하기 위하여 쓴 글임을 서두에 알립니다.

익숙한 일상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일상으로 찾아 들어가는 그 관문을 여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지 늘 궁금해왔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맞이하는 지금에서는 아쉬움이 가득하게 되더군요. 한 때, 수많은 경쟁에 깨지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시험하던 때에는 감히 꿈꾸지 못했던,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된 요즘, 장학금과 다음 학습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저에게 어느 날 페이스북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학교 교지 편집장이더군요. 교지에 들어갈 글을 하나 써 달라고 했습니다. 뭐든 좋으니 – 이를테면 졸업하는 소감이라던가, 아니면 뭐 남기고 싶은 말이라던가 – 글을 하나, 써 달라고 말입니다.

글이라……. 평소 개인 블로그까지 운영하면서 각종 생각들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저였지만, 이상하게도 이 날 만큼은 그 메시지에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라도 알면 뭐라도 해볼 터인데, 이상하게도 도통 알 수가 없었죠. 단지 귀찮은 것인지, 아니면 어디 오기라도 들었는지. 답장을 치려고 해도 칠까, 말까 – 하면서 그냥 하염없이 눈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할 말이 없는 것일까. 아니, 또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늘 그렇듯 그 말들이 모두 정리가 안 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에 싸여 있을 때, 문득 저는 이상하게도 얼마 전 처음으로 썼던 제 풋풋하고 짧은 소설, <고독(孤獨)을 쓰는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소설을 집필하던 시간들이 문득 스쳐 지나갔을 때, 모든 감정을 뚫고 올라온 단 하나의 감정은 다름아닌 ‘부끄러움’이더군요. 다같이 쓰는 소설이었는데 은근 제가 무언가 이기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소설 제목을 <고독(孤獨)을 쓰는 시간>이라 하자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고, 주된 서사의 흐름과 설정에 이르기까지 군데군데 손을 뻗치기도 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러한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때의 멈출 수 없었던 저 자신을 여전히 옹호하게 되더군요.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소설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어떤 것’이 하나 있었다는 것이, 다시금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은, 소설을 집필하기 전에 – 한창 대학 입학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을 때 –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대입 원서를 집어넣고 나니 확실해진 생각이었죠.

……. 바로, 제가 지난 2년에 걸쳐 경남과학고등학교에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결국 모두가 상처받고 있구나. 나 뿐만이 아니고, 모두가, 서로가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면서 억지로 웃고 있구나. 그렇게 살고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공유하고픈 강력한 욕구였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더군요. 소설을 쓰려고 맨 처음에 집에서 노트북을 열어 제가 좋아하는 에디터 프로그램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 말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 예전 룸메이트에 관한 기억이었죠. 다소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그 룸메이트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습니다. 시끄러운 것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이 저와 비슷했기 때문에, 매일 코를 고는 다른 한 룸메이트 덕에 때로는 함께 화장실 휴지로 귀를 틀어 막고 베개를 뒤집어쓴 뒤 잠을 청하면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였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침대에 앉아 있던 그 친구의 손목에 저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자국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었죠. 놀란 저는 그 친구에게 그 손목 자국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제 상식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손목에 나 있는 몇 개의 그인 자국들은 별로 ‘평범함’에는 합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웃으면서, 소매를 걷어올리면서 보여준 팔뚝은……. 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여전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만 하더군요. 물론 그 룸메이트의 팔뚝 곳곳까지 있는 흉터는 조금 오래되어 보이기는 했고, 모든 흉터들 중에 최근에 생긴 것은 다행히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뭐……. 그래도 그 정도 흉터를 가지고 있다면……. 제가 잠시 침묵을 지키자 이윽고 그 친구가 말하더군요. 자기는 원래 자해(自害) 시도를 몇 번씩 했다고. 중학교 때부터 그랬고, 한 번은 손목을 그었다가 병원에 간 적도 있다고 말입니다…….

조용했던 그 친구를 떠올리니, 항상 이 경남과학고등학교에서 제가 살아가면서 들었던, 특히 입학 초기에, 그리고 시험 기간에 많은 이들이 장난처럼 혹은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어떤 한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그것은 다름 아닌

자살(自殺)

이라 불리는 단어였는데, 많이도 들었던 이 단어는, 저 또한 어느 한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던 기억이 있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청소년 자살률은 물론, 전 인구를 망라한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에 달하는 기염을 토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이 기억이 나더군요. 제 기억으로는 전문가들이 특히 청소년 자살률에 관한 분석을 행할 때면, 한약방에 감초가 어디 안 빠지듯이 그 원인이 우리나라의 다소 빡빡하고 힘든 교육 제도의 현실에 있다고 습관처럼 말했던 것 같은데, 저도 이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조금 놀 수 있다고 쳐도, 중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는 대입을 위한 6년 동안의 쉼 없는 궤도에 오르는 현실은, 요즘 초등학생 때부터는 학원을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5~6살이 되면 ‘영어 유치원’을 고민하는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고……. 다만, 제가 이러한 전문가들이 뽑는 ‘높은 학업열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원인’이라는 분석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제 머릿속을 스쳤던 것은 약간 달랐습니다. 바로, 이러한 학업적 경쟁의 과정 속에서 느끼는 고독(孤獨)이나 무력감, 자신에 대한 회의와 실망감, 자신이 알고 있던 스스로의 붕괴의 과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실토하기 어려운 현실이 그것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써, 저에게 그렇게 멀지 않던 대입 준비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녹여넣어야 하는 자기소개서에서조차,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 때가 말입니다. 물론 그 거짓말이 ‘거짓된 사실을 적는다’의 뜻은 아니었지만, 그 거짓말은 흔히 제가 전자(前自)의 것과 구분하기 위하여, 제2형 거짓말이라고 종종 칭하던 ‘의도적으로 사실을 숨기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었죠. 아직도 생각이 나더군요. 친구와 겪었던 갈등이 사실 종국에 다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사정관들에게 ‘아직 친구와 화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쓴다면 제가 이른바 ‘인성파탄자’로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에 몇 가지 사실을 숨기고, 그럴 듯 하게 이어붙이던 저의 모습이 말입니다.

여전히 깜빡거리는 키보드 커서 앞에서 저는, 솔직해지고 싶은데 솔직해질 수 없는 것 – 혹시 어쩌면 – ‘평가’와 ‘타인’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타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솔직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 는 물음의 연속에 꽤 오랜 시간을 시달렸습니다. 결국, 모두가 거짓을 보이며 너도 고통스럽고 나도 고통스러운데, 그것들을 모두 솔직히 ‘나 아프다’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니 공감대는 결코 형성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가 정한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생활에도 바빠, 주변에 대한 생각, 그리고 말하고 싶은 어떤 것들이 생기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지난 2년 동안 너무 잘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 그랬더군요, 결국. 제가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말하려고 해도, 여전히 저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이 좋게 봐 주는 모습 그대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이더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솔직하게 ‘나 서운하다’, ‘나 아프다’, ‘나 힘들다’……. 그렇게 주변에 말했다면 혹시 무언가 달라졌을까. 제도 속에서 고통받으면서, 수많은 죽음과 절망을 생각하면서 비틀거리는 누군가가 제 스스로가 그린 자화상이었던,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꿈틀거렸던 지난 2년이 달라졌을 수 있을까는 생각이 말입니다. ‘꿈’, ‘목표’, ‘비전’과 욕심을 끝까지 추구하니 남은 것은 좋은 이미지였지만, 한 편으로는 껍데기만 남은 듯 바스라지는, 이제는 너무 지쳐버린 저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는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그리고 저 자신에게 스스로 명확히 선언해두기로 했습니다. 내 스스로의 삶의 의미는 ‘꿈’, ‘목표’, ‘비전’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분명히 지난 2년 동안 확인했듯이, 그러한 욕심과 그에 대한 추구로부터 기원하는 다른 이들에 대한 시기, 비교, 경쟁, 비난, 몰이해, 싸움은 스스로를 더욱 피곤하고, 복잡하고, 악(惡)하게 만들 뿐이라고. 나 스스로는 솔직해질 수 있고,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끊임없이 비틀거리는 이 여정에서도 삶을 끝까지 긍정해낼 수 있다고.

왜냐하면, 삶의 진정한 의미는 살아있다는 그 사실, 그리고 살기 위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있기 때문이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다졌을 때, 저는 비로소 교지 편집장에게 답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네. 하겠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