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23. 반정상(半正常)의 영역

사유 #23. 반정상(半正常)의 영역

2021-06-17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어떤 인사와 어떤 대학의 상(傷)에 대하여


오늘 대학(大學)의 기말고사가 끝이 났으나 나는 이상하게도 고등학교 때면 종종 시험이 끝날 때마다 느끼곤 했던 일련의 해방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에게 있어 1학기가 종료되었다는 인지가 변형되어 나타난 감각의 총체란 고요함의 정서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한 고요함의 정서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안도감이라고도 여겨질 수 있겠으나, 사실 가장 정확한 표현이란 아무런 심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진술이 될 것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래도 나름의 시험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났다는 착각이라도 있었지만, 대학에서는 그런 것이 아무래도 없는 듯 했다. 이제는 시험도 삶의 한 단편(斷片)으로서 유화된 것이라기도 한 것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가 없었으나,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고요함의 정서는 오늘 <문학과 철학의 대화>라는 강의의 시험이 끝났을 때 벌어진 모종의 작고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을, 그러나 나에게는 별로 그렇지 못했던 어떤 인사에서 비롯한 당혹스러움 또는 이상함에 대한 직시와 혼합되었기에 더욱이 혼란스러웠다. 다름아닌 해당 강의의 조교 선생님께서 나에게 “수업에 잘 참여해주어서 고맙다”라고 인사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 인사에는 물론 어떠한 악의도 없었으며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인사로 인하여 조교 선생님에 대한 평가라던가 내 기분이 퍽 상한 것 또한 전혀 아니다. 그러나 그 문장, “수업에 잘 참여해주어서 고맙다”라는 문장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에 자꾸 걸리고 걸렸다. 점심을 먹으러 캠퍼스를 가로질러 가며, 계단을 오르는 그 순간에도 계속 걸렸다.

그러고 보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모든 학생의 당연한 도리이며 그것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학생에 대한 일반적인 상(像)이 아닌가.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문장은 어떤 측면에서는 그러한 나의 상(想)에 대한 이의의 제기로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윽고 깨닫게 되었다.

요즘 대학의 학생들에게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인가? 나는 문득 온라인 수업에서 화상 캠과 마이크를 끄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학생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조교 선생님께서는 그런 학생들 사이에서 몇 안되는 마이크와 화상 캠을 키고 서로의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시켜주는 기회를 허락해준 학생 중의 하나로서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신 것인가. 나는 만일 그렇다면 그 조교님의 마음에 대해서는 지극히 감사드리고 싶으나, 한편으로 나를 씁쓸하게 하는 어떤 대학의 상(傷)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조교님의 마음이 나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러한 조교님의 한 마디 감사한 인사가 오히려 나의 대학의 한 학기가 종결에 다다랐을 때 이러한 고요함의 어떤 영역에 너무 지극히 기여하고 있는 어떤 한 대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문득, 우리 모두 너무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대학의 어떤 의미가 지금에서는 달라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모든 것은 사소한 일조차도 너무 부정적으로 보곤 하는 이상한 나의 사고방식이 원인이었으리라고 나는 그저 얼버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