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30. 지적 공동체로의 서문(序文)

사유 #30. 지적 공동체로의 서문(序文)

2021-09-24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Cafe 커피사유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최근 들어 나는 나 자신이 지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즉, 나는 나 자신이 속하며 동시에 나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어떤 공동체가 하나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아마 ‘지적 공동체’라고도 부를 수 있을 이러한 나의 생각은 한인섭 교수가 번역한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체사레 베카리아는 그가 『범죄와 형벌』이라는 책을 출판할 때에 혼자서 기술하지는 않았고, Academy of Fairs라는 서클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문득 예전에 EBS 다큐멘터리나 각종 서적 등지에서 본 여러 내용들이 떠올랐다. 예컨대 한 시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거나 세상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로고스(Logos)적 사유를 보여준 위대한 역사의 문호와 지식인들은 그들이 의사소통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타자(他者)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상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자신의 사상을 다양한 반론과 의견을 토대로 다듬으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위대한 역사의 문호들과 사상가들이 그러했다면, 나 또한 비슷한 것을 하나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학문을 제1의 가치로 여겨야 하는 대학생이 학문을 위해 필요한 커뮤니티를 마련하지 않는 것, 즉 서로의 사상과 지식, 견해를 교류하면서 철저한 토론과 토의에 모든 것을 부쳐 상호의 대립으로부터 변증법의 수많은 산물들을 생산해내지 않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물론 스터디 동아리나 어떤 세미나 동아리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혹은 이들에 가입하는 것도 이러한 잘못을 교정하기 위하여 내가 행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싶은 것이다. 즉, 나는 조금 더 확장된 형태의 학문 위주의 공동체를 구성해보려고 한다.

사람들을 모아 소속과 사상의 경계를 뛰어넘어 어떠한 주제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일종의 서클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 것인가? 기존의 대학 동아리는 같은 학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연합 동아리라 하더라도 비슷한 학군 혹은 관심사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기존에 있는 수많은 토론과 토의 동아리들은 지향하는 바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 모든 동아리들은 사회 각계의 구성원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사회의 공통된 문제 혹은 현상에 가려진 진리에 가깝다고 판단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합의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동시에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내가 찾아내는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공동체를 내가 구성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마땅히 계획을 세워야 한다. 기존 지적 공동체의 역할을 해 오던 대학이라는 기관은 인터넷의 발달 이래로 일어난 수많은 세상의 변화들, 이를테면 인터넷 상의 불특정 다수의 집단지성을 이용하는 위키백과와 같은 시도와 미네르바 대학 등과 같은 시도들을 보면, 소속과 사상의 경계를 더 뛰어넘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대학은 인터넷과 같은 통신 기술에서의 혁명이 등장하기 이전의 문명의 산물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대학은 많은 교수와 대학의 총장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지식의 보고이자 동시에 지적 공동체이고 인터넷이 있는 지금도 물론 그러하지만,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이상 내가 한 가지 실험을 해 보는 셈치고 시도해보는 것도 의미가 그렇게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개인적인 욕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에 나 자신이 지금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라도 그 목적이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확장된다면, 이것이 나쁘다고 주장할 만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