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25. 식인(食人)의 욕구

사유 #25. 식인(食人)의 욕구

2021-07-14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나 자신에 아직 속하지 않은 것들을 향한
끝없는 갈망


… 배가 고프다. 요즘들어 나의 공복감(空腹感)이란 특히 극심해져서 도저히 어떤 존재들을 끊임없이, 그리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 않는다면 분명히 영혼마저 죽어버릴 것 같다는 이상한 불안감에 시달리게끔 한다.

예전에는 나는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솔직하게 지금보다 몇 년 전에는 나의 위장이 작았던 것인지, 혹은 오장육부의 소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에게 누군가가 제한적으로 공급하는 몫만 먹어치워도 충분한 포만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러한 포만감은 그 몇 년의 시간 동안에 사실은 그저 착각에 불과했음이 증명되어버렸고, 오늘날 나는 내가 잡아먹어야만 할 수많은 사람들의 영역들을 올려다보면서, 그 거대한 크기에 더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식인(食人)의 욕구를 느끼고 있다.

사실 나에게 있어 TV, 신문 등과 같은 매스 미디어와 서점 등과 같은 어떤 집합적인 공간들은 어떤 음식을 추천하는 가이드 저널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매스 미디어와 서점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다음으로 잡아먹어야 할 어떤 사람의 영역을 소개시켜주고 그 사람으로 나의 식욕을 유도하는 것이므로 나는 최근 들어 그러한 공간들을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식욕에 압도되어 버리고 만다.

나는 나의 식욕이 나르시시즘적이며 동시에 너무 지나치게 강한 욕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는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식욕이 결코 멈추지 않을 사실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러한 나의 강력한 식인(食人)의 욕구라는 말에 그 단어가 본능적으로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거부감 혹은 이미지로 인하여 질겁을 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나는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단언해두는데, 나의 식인(食人)이란 그 누구의 생명도 앗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식인(食人)의 행위로 목숨을 위협받는 쪽은 그러한 사람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본인, 즉 나라는 존재 그 자체이다.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쪽은 먹히는 쪽이 아닌 오히려 먹어치우는 쪽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나의 거대한 욕심에서 비롯한 식인(食人)은 그 사람을 통째로 삼켜 나 자신이 아닌 어떤 존재를 나 자신 안으로 넣어 세우는 행위라고 궁극적으로는 요약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목에 그 사람이 걸려버림으로써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삼키는데 매우 큰 노력과 이에 수반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나의 식인(食人)의 행위가 결코 유용하지 않은 어떤 사람들을 삼키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행하는 비난에 종종 시달린다. 게다가 어떤 측면에서는 그러한 행위가 점차 나 자신을 이상한 사람 즉 광인(狂人)으로 만들고 있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비난들에 대해서 예전에 내가 삼킨 바가 있던 프로이트라는 사람을 다시 내 위장 속에서 끄집어내서 그들 앞에 세움으로써 대답을 대신하려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의 발육 과정에 대하여 ‘리비도적 구순기’라는 과정을 제시한 바가 있었으며, 그의 이러한 제시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은 식인(食人)의 경험이 있다고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제시란 오래 전, 우리들의 어린 시절의 발육 과정에 주로 한정하여 적용되어서, 조금 나이가 들기 시작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경우를 찾아보기가 아무래도 힘든 것만 같다. 그러나 인간이 본연적으로 「호기심」이라는 특성에 분명히 포함되는 식인(食人)의 욕구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러한 사람은 결국 굶어 죽고야 말 것이라고, 영혼마저 모두 죽어버린 채로 그저 초점없는 눈으로 걸어다니기만 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해본다.

… 배가 고프다. 그러나 이것 그리고 내가 끊임없이 이 공복을 채우기 위하여 수많은 이들을 삼키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나는 반드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끊임없는 공복감에 시달려서 누군가를 먹어치우고 있는지 아닌지 확실히 알아보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식인(食人)의 욕구를 우리가 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성장은 멈추고 그 결과는 종국적으로 우리 자신을 살해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 나와 비슷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기를 희망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동시에 영원히 해결되지 않고 나를 괴롭힐 끝없는 배고픔이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즉 끝없는 불안감 그러나 동시에 모종의 식인(食人)의 욕구가 나에게 허락하는 일련의 불연속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이러한 상황을 계속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 오늘의 아이디어 원천: Mafumafu – 공복(空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