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42. 좌절 속의 연대

사유 #42. 좌절 속의 연대

2022-02-03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Cafe 커피사유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그 누군가와 나의 좌절, 그리고 연대에 대하여


그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지금 수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떤 문제니 무엇이니를 해결하겠다고 ‘시민 연대’니 ‘시민 정치 참여’니 해 봐야 소용이 없다. 네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지식을 갖춰야 한다.”

… 나는 바보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 누군가가 지적한 대로 내 주장이나 행동의 의미가 부정당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비슷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같은 문제와 좌절을 맛보았을 그 누군가의 절망을 그 발언 속에서 보았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그냥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걱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실은 첫 번째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뒤의 두 이유도 그렇게 틀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나는 정말로 ‘바보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저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지적한대로, 정보의 비대칭성과 자본의 비대칭성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가지고 있고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문제가 정확히 어디에서 근원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사장되지 않을 사회적 위치와 기반 위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지식이 없는 경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 문제에 대한 관련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해보이는 결정이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이들의 견해를 참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은 항상 신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이들이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을 것이 자신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서 이른바 ‘힘’과 ‘지식’이 없는 사람은 항상 당하는 입장에 설 확률이 높다. 이것은 현실이 그 누군가에게 뼈저리게 가르쳐준 교훈일 것이기도 하며, 내가 맞닥뜨릴 현실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나의 행동, 나의 연대에 아예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는 것이란 불가능한 일이며, 그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힘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각자가 잘 아는 분야가 있고 각자가 모르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았던 인간은 그래서 사회라는 공동체를 구성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위의 누군가의 주장에서 간과된 부분이다. 사람은 연대해야 한다. 비록 각 분야 제일의 전문가들이 모인 연대가 아니더라도 연대해야 한다. 진실이 덮이지 않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든지 연대해야 한다.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는 힘은 단 한 사람으로 발휘될 수 없다. 부족하더라도, 힘과 지식이 덜하고 조각났을지라도 이들을 모아야만 진실과 문제가 덮어지는 세상에서 그나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만일 나 자신 스스로가 모든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야 있겠지만, 그것은 지식과 사회적 지위의 광활함을 생각해볼 때 불가능하므로 오히려 나는 연대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바보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나는 그러지 않고서 바로 그 누군가의 주장에 대해서 곧바로 다음과 같이 반박했어야 했다. 당신은 〈모르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은 의미없음〉을 말했지만, 사실은 〈모르기 때문에 연대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세상을 정말로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은 가능성은 없다. 모든 것을 알 수 있거나 가질 수는 없는 것이 당신과 내가 살아왔고 살아갈 현실이기 때문이다.

… 그래, 인정해야겠다. 나는 ‘바보같이’ 울었다.